유럽 여행. 여러분은 유럽 여행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누군가에겐 지친 일상에서의 소중한 일탈이 될 수도 있겠고, 누군가에겐 유럽 여행 자체가 목표가 되어 일상을 견뎌낼 수도 있을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여행기는 부끄럽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소중한 경험 내지 기회일 수도 있을텐데 저는 어쩌면 일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를 맞이하는 태도가 너무 형편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전에 제대로 된 계획을 짜지도 않았고 여행에서 취하고자 했던 목표도 없었습니다. 스무살의 나는 다양한 새로운 것들을 주관있게 보기에는 경험이 부족했습니다. 나중에 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한 후의 내가 유럽에서 같은 장소를 본다면 더욱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나중에 기회가 또 올까요? 왜 당시에는 어리다는 구실로 귀중한 것을 알아보지 못했는지 조금의 후회 내지 반성으로 여행을 곱씹어봅니다.
<2018년 10월 25일, 내 여행기를 정주행 하다가>
탈출구에 다다랐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대학이었지만 예상보다 공대생의 일과는 교복 입던 시절에 베시시 상상하던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래도 생애 처음으로 맞이하는,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학교 또는 학원에서 하던 보충 수업의 스트레스가 없는 방학이 저에게도 찾아왔습니다. 8월 중순인 지금 첫 방학을 곱씹어보았을 때, 두 달이 넘는 방학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기는 정말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이번 방학에는 짧게나마 걸어서 동해안 일주도 해보고, 유럽 여행도 갔다오고 처음 맞는 과도한 자유를 나름 잘 맞이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 여행은 7월 8일부터 7월 22일까지 총 13박 14일 여정으로 갔다왔습니다. 계획을 상세히 짜고 싶었는데 너무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출발 당일에까지 미루게 되어 거의 무계획으로 혼자 떠났습니다. 여행은 계획에 구애받지 않는 것이 참된 것이라는 어떤 글을 읽으며 자기위안을 했습니다. 13박 14일이라는 시간은 여행 길이에 제약이 없었지만 4개국 중 큼지막한 도시를 느껴보기엔 제 기준에서 적당한 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갑작스럽게 떠난 유럽 여행이었기 때문에 항공권 예약은 2주전에 했는데, 독일항공으로 알려진 루프트한자(Lufthansa) 에서 괜찮은 가격으로 예매했습니다. IN 인천 - 뮌헨 - 로마, OUT 런던 - 프랑크푸르트 - 인천 순이었습니다. 오며 가며 둘다 대략 14시간쯤 걸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진들은 모두 아이폰6로 찍은 사진들입니다. 카메라에 관련된 지식이 전무합니다. 사진이 그렇게 많지도 않습니다. 무심하게 찍은 사진들만의 나름의 묘미가 있으니 재미있게 봐주세요.
장거리 여행은 10년전에 대한항공 직항으로 유럽 여행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기억을 비교하기는 우습지만 굳이 비교한다면 기내 서비스는 루프트한자가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며 가며 맥주를 많이 주문했는데, 역시 독일 국적기라서 그런지 아니면 비행기 안에서 먹는 맥주라서 그런지 아주 훌륭했습니다. 기내식은 한식과 양식 둘 다 입에 맞았습니다. 가격에 비해 꽤나 괜찮은 항공사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독일 사람들 답게 일처리도 확실하리라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경우지인 뮌헨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뭔가 느낌이 출발 직전의 게이트같지 않게 한산해서 직원에게 물어본 끝에 제대로된 게이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게이트가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작은 비행기를 타고 마침내 밟은 유럽여행의 시작점 이탈리아 반도. 처음 도착해서 든 생각은 '뭔가 날씨가 이상하다!' 였습니다. 분명히 밤 9시 즈음이었는데 후텁지근한 것이 혼자 상상한 지중해성 기후와는 꽤 괴리감이 있었습니다. 특히 공항 내 에어컨을 틀지 않아 만약 야자수만 있었다면 적도 인근 나라로 착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나중에야 들었지만 당시 이탈리아는 폭염의 역사를 새로이 쓰고 있었습니다. 예상 외의 더위에 고개를 떨구고 여정에 대한 걱정을 잠시 하다 곧내 정신을 차리고 공항에서 테르미니 역으로 가는 직행 기차를 탔습니다. 숙소는 테르미니 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 주로 서구권 여행자들이 많이 다니는 호스텔이었습니다. 혼성 도미토리 형식에 4인 1실. 구글 맵을 이리저리 훠이훠이 돌려가며 호스텔을 찾고 호스트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그렇게 첫날밤이 저물었습니다.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침 9시. 모두들 로마가 떠나갈듯이 코를 골며 현지인 마냥 잠을 자더군요. 그런데 한 침대에선 여자와 남자가 같은 침대를 쓰고 있더랍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전날에 만났다고 합디다. 토종 한국인의 마인드에 살짝 충격이었습니다. 어쨌던 간에, 9시까지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덕에 혼잡할 것이라 예상했던 화장실에서 볼일을 느긋하게 다 본 뒤 첫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첫 일정이라고 할 것도 없는 것이 이탈리아 현지 친구가 가이드를 해준다고 해서 그 말만 철썩같이 믿고 아무런 계획을 짜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 친구만 믿고 약속 장소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로마 국립 박물관이 있어서 잠시 들렸습니다. 어디선가 영화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 있어 로마에서의 첫 사진을 찍었습니다. 박물관은 들어갈까 고민하다 약속 시간이 다되어 그냥 나왔습니다.
목적지인 스페인 광장으로 가는 길. 되도록 대중교통보다는 도시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 걸어다녔습니다. 역시 실용의 유럽인지 경차가 많더군요. 도로가 아스팔트가 아닌 돌로 이루어 진 것이 독특했습니다. 이런 도로는 여행한 도시중에 로마가 유일했습니다.
숙소에서 한시간 남짓 걸어 도착한 스페인 광장. 걸어오면서 로마가 참 작은 도시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후로도 많이 느꼈는데, 유럽 국가들의 도시들은 우리나라 서울처럼 거대하지 않습니다. 지역이 균형있게 발전한 듯 한데, 유럽 사람들의 본고장에 남아있으려는 경향이 한 몫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코리아 타임 절로가라할 이태리 타임 끝에 친구를 만났는데 이 친구가 이탈리아를 잘 모르는 이태리인인지라 상태가 그나마 나은 토종 친구 둘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위 사진을 보면 날씨가 괜찮아 보이는데 사실 굉장히 어마무시하게 더웠습니다. 그래서 만나자마자 뭘 먹고 싶냐는 말에 반사적으로 젤라또가 튀어나왔습니다. 지들끼리 뭐라 상의하더만 어느 젤라또 가게에 가서 카라멜맛 젤라또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3.65 유로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화로 5000원정도 하는 양이 아래 사진입니다. 베스킨라빈스는 땅을 파서 장사하는 것이 아닐까 잠시 생각했습니다. 맛은 뭔가 유서깊은 로마의 맛이 아니라 그냥 엄청나게 달달한 그런 아이스크림입니다. 반쯤 먹다 다 녹아서 버렸습니다. 젤라또라는 멋진 이름을 쓴 아이스크림은 그냥 조금 쫀득한 아이스크림이더군요.
젤라또로 포식한 후 첫 목적지는 판테온 신전. 현지 친구들에게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주겠니?' 라고 했더니 '너는 그럼 한국 절들의 역사를 아니?' 라는 역공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위키백과로 자습했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에는 거의 내용이 없으니 영문판 위키백과로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더듬더듬 읽어야 했지만 그래도 멀리까지 와서 이야기는 알고 가야하지 않겠어요? 물론 지금은 관련 내용이 하나도 기억이 안납니다.
역사적 배경은 기억이 잘 안나지만 중앙의 이 빛기둥은 정말 멋졌습니다. 설계한 사람에게 박수를. 신전 내부에는 관이 있었는데 이탈리아의 역사적인 인물들이 들어가있다고 합니다.
다음 목적지로 트레비 분수를 정말 가고싶었지만, 아쉽게도 트레비 분수가 보수작업 중이더군요. 10년전에 찍은 사진의 위치에서 한번 더 찍고싶었는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10년전에 진실의 입에서 찍은 사진을 한번 더 찍고 싶어서 진실의 입이라도 가봤더니 사람이 도저히 너무 많아서 기다릴 의욕이 안나더군요. 사실 혼자였으면 기다렸겠지만 지겹게 이 풍경을 봐왔을 옆에 친구들을 봐서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10년전 위치에서 현재 사진을 찍으려던 계획은 무산되었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콜로세움. 콜로세움을 실제로 보면 그 크기에 다시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유럽의 옛 건축물들을 보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서양 건축물들은 정말 굉장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 오래전에, 현재까지 보존될 수 있는, 이런 세련된 양식의 건축물들을, 그 옛날에, 그 옛날에 말이죠. 로마 길거리를 걸어다녀보면 수백년된 건물들 투성이입니다. 로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온 유럽이 그렇습니다. 참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과연 동아시아에도 대리석이 풍부했다면 비슷한 건축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점심은 무얼 먹었냐구요? 로마 근교에 사는 이 친구들이 말하길, 로마 물가는 매우 살인적이라 버거킹을 가자고 하더군요. 수천 마일을 떨어져 한국에서 온 친구에게 버거킹을 먹자고 제안하는 친구들이지만 문화차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게 마음이 편하더라구요.
콜로세움을 끝으로 친구들과 헤어지고, 지역 술 탐방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이태리 대표 맥주 페로니(Peroni), 노란 것은 리몬첼로(Limoncello), 하얀 것은 이름을 까먹었네요. 저녁 메뉴는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시켰습니다. 한국에서의 달짝지근한 스파게티와는 다른, 다소 푸석푸석하고 짠 까르보나라였습니다. 먹다 남겼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숙소로 돌아와서 같은 음식점에서 먹은 영국인 룸메이트가 있길래 물어보니, 굉장히 맛있었다고 하더군요. 하긴 영국 사람이 무얼 먹어도 맛있긴 하겠습니다만.
다른 술들도 괜찮긴 했지만, 페로니 맥주는 저한테 유럽에서 먹었던 병맥주 중에 가장 맛있었던 것 같습니다.
로마에서의 셋째날. 전날과 다름없이 아홉시에 기상해 화장실을 독점합니다. 분명히 전날 다같이 열두시에 취침했는데 동양인은 겨우 아홉시간만 자도 개운한가봅니다. 오늘은 친구가 사는 로마 근교 도시 브라차노(Bracciano)에 갑니다. 원래는 한시간 남짓 거리인데, 전날에 전철에 사고가 나는 바람에 해당 구간을 피해서 가려고 하니 한시간 반 정도가 걸렸습니다.
가다가 굉장히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3유로 가량 하는 브라차노행 티켓을 사고 기차에 앉았더니 역무원이 펀칭을 안했다며 벌금을 내라더군요. 영어를 못하는지 못하는척 하는건지 다짜고짜 영어로 된 '50유로 벌금내세요' 피켓만 들이밉니다. 사람들이 쳐다보고 참 봉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문자메시지로 온 결제 확인 문자까지 보여주며 오늘 산 티켓이 맞다고 실랑이를 벌여봤지만, 강경한 태도에 결국 벌금을 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행객으로서 너무 기분이 나빠 ID카드를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현지 친구가 말하길, 이태리 사람한테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종의 용돈 같은 것이라서 여행객들을 노린다고 합니다. 대신해서 엄청 미안해 하더군요.
이탈리아는 다녀보면 알겠지만, 법치가 제대로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나라입니다. 길거리와 역마다 집시들이 넘쳐나고 경찰들은 방관합니다. 정치인들 부패는 장난이 아니고 실제로 국회의사당에서 나오는 국회의원에게 썅욕을 퍼붓는 광경도 목격했습니다. 아름다운 나라지만 미래도 아름다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유럽의 골칫덩이 PIGS 중 하나인 이탈리아, 대한민국이 바짝 추격하고 있습니다.
브라차노는 굉장히 큰 호수가 있는 소규모 도시입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로마와는 다른 느낌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조용하고, '걸어서 세계속으로'에서 볼만한 거리들이 있고, 안에 있던 성도 좋았습니다. 유명한 스타들이 자주 결혼식을 이 성에서 치룬다고 하더군요.
점심으로는 친구네 집 가서 이탈리아 가정식 스파게티와 치즈를 곁든 토마토를 먹었습니다. 둘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점심 식사 후 이 마을에서 성 다음으로 유명한 호수에 왔습니다. 굉장히 큰 호수입니다. 마치 해변같이 되어있고 더운 날씨에 사람도 많더군요.
호수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마을 이곳 저곳을 산책하다 저녁으로 테이크아웃 피자를 먹은 후 로마의 숙소로 되돌아왔습니다. 아래는 브라차노 역입니다.
원래는 4일차 저녁까지 로마에 있으려고 했었는데, 갑자기 로마가 갑갑해져서 4일차 눈뜨자마자 피렌체로 날랐습니다. 이런게 무계획 자유여행의 묘미가 아닐까요?
-피렌체 편에서 이어집니다.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