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우10이 HiDPI에 신경을 쓰겠다는 기사를 본게 2년 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윈도우10 레드스톤2가 출시되었다고 하여, 맥북에서 윈도우를 설치해서 200% HiDPI(High Dots Per Inch, 인치당 픽셀 집적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뜻함)모드로 사용했더니, 뭐 이정도면 쓸만 하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맥북 프로의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를 쭉 써오면서, 운영체제가 뒷받침 되었을 때 HiDPI로 보는 글자의 선명도는 아닌 것과의 차이가 거진 산업혁명 전후의 차이 정도라는 것을 느껴왔다.
그래서 항상 4K(UHD) 모니터가 대중화 되길 기다리고 있었고, 그중에서 27인치 크기에 4K 해상도를 가진 녀석을 유독 물망에 올려놓고 있었다. FHD(Full HD) 해상도가 가장 편안한 화면 크기가 27인치라고 생각했고 HiDPI를 쓰기 위한 FHD(1920 X 1080)의 최소 정수배 해상도가 4K(3840 X 2160)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감이 안잡힌다면 아래 사진을 보면 이해가 쉽다.
<100% 원본 vs 200% 스케일링. 오른쪽은 왼쪽에서 하나였던 픽셀이 네개로 쪼개져서 더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다.>
초기 모델 중 납득할만한 가격표를 가진 물건들은 예외없이 시야각이 좁은 TN 패널을 달고 나왔고, 조금 쓸만하다 싶은 녀석들은 가격이 세자리가 넘었다. 아이맥 5K 모델을 출시했을 때 '5K 모니터를 사면 컴퓨터가 딸려나와유' 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쓸만한 물건들이 나오고 사실 근래에 LG의 27UD69P 모델을 눈독 들이고 있었다. 가격도 현실적이었고 모니터에서는 한가닥 한다는 LG 아닌가.
그러던 중 델에서 신제품을 출시했다는 소식을 듣고 잽싸게 확인해보니 이럴수가, HDR도 지원하고, DELL의 스탠드는 LG 것 보다 훨씬 좋았고 디자인도 더 고급스러웠다. 마지막 결제 전에 간을 살살 보며 저울질 하던 중 60만원이었던 가격이 7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아뿔사. 처음에는 잘 못 본게 아닌가 싶었는데, 와우! 정말 하루아침에 10만원이 올라있었다. 심각하게 고민했다. 과연 10만원이 더 비싸진 이 시점에서도 이걸 사야하나. 하아, 아직도 이 가격에는 이 친구가 최선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놈의 디자인. 조금만 투박하게 생겼어도 LG 모니터가 지금 내 책상 위에 있었을걸>
개봉하면서 주의할 점을 하나 말하자면, 스탠드를 조립하고 모니터에 끼운 후 패널부를 박스에서 분리하는게 훨씬 낫다. 들뜬 마음에 본체부터 꺼내서 조립하려고 했다가는 무거운 무게에 당황할 것이다.
박스 안을 열다보면 캘리브레이션 리포트가 있다. 스펙시트에는 sRGB 99%라고 적혀있지만 애플 제품들은 sRGB보다 더 넓은 색을 제공하는 DCI-P3로 확장되는 분위기다보니 크게 인상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동봉되어있는 디스플레이 포트 - 미니 디스플레이 포트(DP - MiniDP) 케이블로 연결해 좋아라하며 쓰고 있었다. 그러다 네이버 로고의 색감이 내 맥북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누가 봐도 내 모니터의 색감이 대비(Contrast)가 지나치게 커서 이상했다. 그래서 구글링을 좀 해보니, 모든 U2718Q에서 디스플레이 포트 케이블 이용시 녹색 광색역이 날아간다고 한다. 그래도 해결법이 있으니 다행이었는데, 동봉된 CD에 있는 드라이버를 설치하고 나서 NVIDIA 그래픽 사용자의 경우 아래 그림처럼 NVIDIA 제어판에서 두 가지를 바꿔주니 색감이 돌아왔다. AMD 사용자도 비슷한 옵션이 있다.
<출력 색상 깊이와 출력 색 형식을 저렇게 바꿔주면 내가 알던 네이버 로고가 보인다>
2017년 12월 26일자로 DELL에서 공식 펌웨어 업데이트가 나왔다.
펌웨어 업데이트를 설치하면 앞서 U2718Q의 고질병이였던 DisplayPort로 연결시 녹색 광색역이 날아가버렸던 문제가 해결된다. 업데이트를 설치하면 위에서 설명했던 그래픽 제어판을 이용한 방식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바로가기 (새 창에서 열림)
위 링크에 접속해서 첨부파일을 다운받은 후, 모니터와 컴퓨터를 USB 업스트림 케이블로 연결한 후 업데이트를 진행하면 된다.
모니터 광색역 테스트를 해보니 업데이트 이전에는 89%부터 색이 날아갔는데 설치 후에는 뚜렷하게 구분선이 보였다.
동봉된 소프트웨어 Dell Display Manager를 설치하면 물리 버튼으로 OSD를 건드릴 것 없이 일부 설정을 컴퓨터로 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기존에 있던 프로그램에다 크기만 200%로 늘려놔서 글씨가 선명하지 않다. 4K 모니터를 출시했으면 그에 맞게 소프트웨어도 좀 더 공들여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큰 욕심은 아닐 터.
처음 모니터를 연결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화이트밸런스가 굉장히 잘 맞다는 점이였는데, 지금까지 삼성 염가형 모니터만 쓰다보니 새 모니터의 그것은 눈이 시릴 정도로 하얀 화면이였다. 원래 화이트밸런스가 잘 맞지 않는 화면 옆에 잘 맞는 화면을 가져다 놓으면 내가 지금까지 썼던 모니터가 이렇게 누렇나? 싶다. 하지만 직접적인 비교를 하지 않으면 그냥 쓰고있는 모니터의 하얀색이 하얀색으로 보이기 마련인데, 기존에 쓰던 삼성 모니터와 새 모니터간의 간극이 너무 커서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모니터의 실물 사진이다. 멋지게 찍으려고 해봤는데 이렇게 보니 참 못나왔다. 이거 하나는 확신을 갖고 말하는데, 이 사진보다 훨씬 멋드러지다.
이 베젤을 보라. LG의 베젤도 얇지만 이너베젤 없는 정직한 이 얇은 띠는 정말 심미적으로 만족스럽다. 그 와중에 윈도우 로고가 이렇게 확대를 해도 굴욕없이 선명하다. HiDPI의 위엄이다.
윈도우10의 경우 디스플레이 설정에서 HiDPI를 로그오프 없이 빠르게 설정할 수 있다. 해상도를 최대치로 올린 후, 200%의 배율로 설정했다.
모니터의 글자를 직접 촬영했다. 이렇게 확대해야 픽셀이 보일 듯 말 듯 하는데, 멀리서 직접 보면 픽셀이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가독성이 무진장 좋아졌다. 정확한 색감은 덤이다.
4K 모니터를 산게 가독성 이유도 있겠지만, 사실 게임도 이 환경에서 해보고 싶었다. 4K 모니터를 대비해서 그래픽 메모리가 넉넉하게 6GB 들어있는 GTX1060을 확보해 놓았었기 때문에 유일하게 하는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해봤다.
카메라의 결과가 모니터에서 직접 체감했던 것을 따라가지 못해 통탄할 뿐이다. 4K로 리마스터된 스타크래프트를 1:1 픽셀 매칭으로 본다는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 사진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고 그 밑은 스크린샷이다.
마찬가지로 스타크래프트2도 4K 해상도로 해보았는데, Full HD 해상도에서 가볍게 돌아가던 최고급 옵션을 4K에서 그래픽카드가 힘들어해서 높음 옵션으로 플레이했다. 4K로 고사양 게임을 하려면 정말 좋은 그래픽카드가 필요하다.
패널 자체의 질은 매우 마음에 든다. 색 온도를 6500k로 설정하니 내 애플 기기들과 색감도 비슷해서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생각치도 못했던 모니터의 부가적인 것들도 편리한데, 스탠드가 정말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아이맥처럼 구멍이 뚫려있어서 선정리를 깔끔하게 할 수 있다. 모니터가 USB 허브역할도 할 수 있어서 총 4개의 USB 3.0 포트가 생기는데 모니터 옆에 난 포트로 USB를 간단히 꼽을 수도 있다.
<USB 허브 기능과 다양한 포트 지원이 장점이다. 맥 유저는 HDMI밖에 쓸 게 없긴 하지만.>
지난 3일동안 모니터를 쭉 사용했다. 사실 나는 사진작업이나 그래픽 관련 일을 일체 하지 않아서 이런 사치스러운 모니터가 필요할까 했으나 눈이 간사하게도 알아보더라. 350cd 밝기는 햇볕이 내리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뚜렷한 화면을 표시해주고 너무 밝을 때도 있어서 평소에는 화면밝기를 낮춰서 쓴다. 화이트밸런스도 정확하고 색감도 또렷하다.
지금까지 이렇게 고가의 모니터를 한 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었는데, 왜 이런 고가의 모니터가 있는지 납득이 됐다. 4K 모니터라는 신문물을 남들보다 조금 더 먼저 사용해보는 대가로 큰 돈을 지불했지만, 후회없는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