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PU 리뷰
2. 맥북프로와 eGPU 사용기
3. Razer Core X 파워서플라이(PSU) 교체
일본 제품을 떠올리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매니악한 감성. 바로 남들이 편하고 넉넉하게 공책 한권을 14포인트로 채워넣을 때 수첩 한바닥에 보이지도 않을 글씨로 빼곡하게 채워넣는, 그러면서 덩치가 산만한 녀석들에 비해 토씨 하나 흐트럼 없는, 그런 밀도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해야하는 높은 집적도로의 여정은 자체 규격을 개발해야함을 의미하고, 자체 규격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키기 힘들기에 비싸진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선택한 레이저 코어 X(Razer Core X)는 정말 ‘반 일본적’인 녀석이다. $299라는 가격을 실현시키기 위해 CNC 가공 난이도를 최소화한듯한 멍청하게 큰 디자인, 가장 표준적인 ATX파워, 보조 입력장치들을 과감하게 빼버린 이녀석은 아쉽지만 한가지는 대충하거나 생략하지 않았다. eGPU 박스로서의 본분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충실하다. 650W의 넉넉한 파워는 하염없이 전기를 축내는 Vega 64조차 넉넉히 감당할 수 있고 변변한 크기는 향후 업그레이드에 제약을 최소화해준다. 동시에 가격이 가장 저렴한 축에 속한다. 부피는 크지만 디자인 자체는 나쁘지 않다. 낙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eGPU 박스가 먼저 도착하고 그래픽카드가 오기 전, 100W에 달하는 파워딜리버리(Power Delivery)가 잘 되는지 궁금해서 먼저 연결해보았는데 이런, 생각보다 소음이 거슬릴만한 수준이었다. 처음에는 측면에 부착된 팬 때문인가 생각해서 팬 전원을 뽑아봤지만 문제는 파워서플라이(Power Supply)였다. 덩치가 큰 박스를 선택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서도 ATX 타입의 파워가 들어가서 골골거리는 다른 슬림형 파워와는 다를줄 알았다. 하지만 우량한 650W ATX 타입의 팬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파워 딜리버리 하나는 기똥차게 기본 충전기의 87W를 상회하는 100W를 뽑아주지만 그래서인지 단순히 충전만 할 때도 고요함을 선사해주지는 못했다. 대충 구글링해보니 슬림형 파워를 가진 박스들은 더 요란하면 요란했지 내 것보다 조용하지는 않은 듯 해서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제로팬 기능이 탑재된 좋은 ATX형 파워로 ‘언젠가’ 교체할 수 있다는 점에 위안을 삼기로했다. 그런데 제로팬 기능을 가진 모듈러형 파워의 가격을 찾아보니 ‘언젠가’가 ‘영원히’로 바뀔 것만 같다.
레이저 코어 X에 그래픽카드를 설치하는 과정은 정말 직관적이다. 공구 하나 없이, 직관적으로 손잡이를 잡아 열고 그래픽카드를 꽂고 전원선을 연결 후 다시 닫아주면 된다. 맥(Mac)에서의 연결 또한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데, 말 그대로 플러그 앤 플레이(Plug and Play), 언제든 꽂으면 작동한다. 애플 아니랄까봐 우측 상단에 자그마한 아이콘이 외부 그래픽카드가 연결됐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물론 참 애플답게도 편한 사용성은 공식 지원되는 그래픽카드를 맥 OS에서 연결했을 때 한정이다. 엔비디아(NVIDIA) 계열의 그래픽카드를 사용하려는 순간, 골치가 아파진다. 여러 방법을 동원해야하고, 무엇보다도 맥 OS가 판올림 될 때 마다 AMD 계열의 그래픽카드는 신경쓰지 않고 업데이트를 하면 되지만 반대측은 엔비디아에서 드라이버를 업데이트 해줄 때 까지 기다려야한다. 설령 우여곡절 끝에 드라이버를 설치해도 어디서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 공식 지원 그래픽카드가 아니니 어디 하소연할데도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마음 편하게 AMD의 베가64를 선택했다. 베가64를 선택했다고 다는 아니다. 애플은 자체 커스텀한 EFI 펌웨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부트캠프를 이용해 윈도우에서 eGPU를 사용하려고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윈도우 진영에서 흔히 사용하는 ‘옵티머스(Optimus)’와 같은 기술을 스위칭 회로를 통해 회피했기 때문에 외장그래픽을 탑재한 맥북에서 특히 난이도가 올라간다. 하지만 엔비디아 그래픽을 사용하든, 부트캠프에서 사용하든 탈출구는 있다. 어떤 조합으로 사용하든간에 개척자가 있다면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eGPU.io ,이곳에는 수많은 사용자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실려있다.
다시 맥에서의 eGPU 연결로 돌아와서, 긱벤치(GeekBench)를 이용해서 간단한 숫자놀이를 해봤다.
내 맥북의 스펙은 다음과 같다
2016년형 맥북프로 15인치 기본형
CPU: i7 6700HQ
RAM: LPDDR3 16GB
GPU: 인텔 내장 HD530 / AMD 라데온 프로(Radeon Pro) 450
저장소: 256GB NVMe SSD
첫번째로 내장그래픽(iGPU)의 벤치마크.
두번째로 있는걸 다행이라고 여겨야하나 싶은 성능의 라데온 프로(Radeon Pro) 450의 벤치마크.
마지막으로 경쟁사의 동급 제품보다 무려 두 배가량의 전력을 소모하는 베가64(Vega64)의 벤치마크.
구글링을 해서 아이맥 프로(iMac Pro)와 베가64의 긱벤치 점수가 약 17만점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말인즉슨 내 맥북프로 2016 + eGPU 조합은 비교했을때 14%정도 성능이 떨어진다. 아이맥 프로의 체급이 다른 제온(Xeon) CPU, 더 넓은 램 대역폭, 썬더볼트3 대역폭 등을 모두 고려했을 때 14%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맥 OS(macOS)에서의 eGPU 설치는 공식 지원 그래픽카드를 쓴 효과를 톡톡히 받아 정말 간단했다. 다만 이제 문제는 앞서 말했듯 부트캠프를 이용한 윈도우 환경에서의 eGPU 설치이다. 맥 환경에서는 노트북의 HD530 내장그래픽(iGPU)과 라데온 프로 외장그래픽(dGPU)간의 전환이 사용자가 전혀 개입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유기성으로 전환된다. 다만, 애플에서 독자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전환 방식이기에 부트캠프에서는 이런 매끄러운 전환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애플이 선택한 해결책은 간단하게도 맥 OS로의 부팅 이외에는 내장그래픽을 비활성화시키고 외장그래픽만 사용하게 해놓았다. 이렇게 외장그래픽으로 부팅되고 eGPU를 연결하는 경우 첫 번째로 PCIe의 대역폭이 모자르게되고, 두 번째로 어느 것이 출력 그래픽인가 하는 정체성의 혼란이 온다. 그래서 사용자 입장에서는 실제로는 윈도우로 부팅하지만 맥 OS로 진입하는 것 처럼 속임수를 줘서 내장그래픽으로 부팅되게끔 해야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윈도우를 사용하게 끔 설계된 컴퓨터에서 맥을 올리는 행위, 즉 해킨토시에서 발전된 개념이 등장한다. 마치 컴퓨터와는 상관 없을 것 같던 캘리그라피가 스티브 잡스에 의해 매킨토시에 접목되듯, ‘진짜’ 맥 컴퓨터에서는 필요 없을 것 같던 커스텀 부트로더가 eGPU 문제 해결에 등장하게 된다. 내장그래픽으로 부팅하는 속임수를 위해서 ‘클로버 부트로더(Clover Bootloader)’가 등장한다. 아 물론, 외장그래픽이 없는 맥은 훨씬 간단하게 설정이 가능하다.
eGPU.io 를 뒤져가며 외장그래픽을 가진 맥북프로와 AMD 계열의 eGPU 조합에서 내가 성공적으로 마련한 가이드는 다음과 같다 (적극 참고한 원문은 이곳을 클릭):
- 부트캠프로 윈도우를 설치한 후 애플에서 제공한 드라이버를 설치한다.
- DDU(Display Driver Uninstaller)를 이용해 윈도우 안전모드에서 그래픽 드라이버를 제거한다
- 자신의 기종에 맞는 DSDT 파일을 다운로드(링크 참조)한다.
- 커스텀 부트로더(링크 참조)를 USB 장치에 설치하고 앞서 다운로드한 DSDT 파일을 넣는다.
- USB를 ‘왼쪽’ 포트에 연결하고 부팅 시 ‘option’ 키를 꾹 눌러 부팅 설정 화면에서 USB를 선택하고 윈도우로 진입한다.
- 최신 버전의 내장그래픽 드라이버를 설치한다.
- gpu-switch 폴더의 integrated.bat 파일을 관리자 권한으로 실행시켜서 내장그래픽이 우선되게끔 한다.
- 장치 관리자에서 ‘연결된 상태로 보기’ 보기 옵션을 선택 후 PCIe Controller x16 - 1901(dGPU에 할당된 레인)과 PCIe Controller x8 - 1905(좌측 썬더볼트에 할당된 레인)를 비활성화시킨다.
- eGPU 박스를 우측 USB-C 단자에 연결하고 마찬가지로 ‘option’키를 이용해 USB를 이용해 윈도우로 진입한다.
- 최신 버전의 eGPU 그래픽 드라이버를 설치한다.
짜잔. USB를 이용해 윈도우로 진입하면 내장그래픽 - eGPU의 조합이 잘 작동한다. 이 USB에 설치한 부트로더를 맥북 내부 SSD에 설치해도 되지만 한번 설정을 해놓으면 굳이 USB를 이용하지 않고 바로 윈도우로 진입해도 된다. 단, 이렇게 커스텀 부트로더를 이용하지 않는 경우 반드시 부팅시에 eGPU가 연결되어야하고 맥북 자체의 화면은 사용 불가능 상태가 된다.
<Dave2D의 RX580 eGPU 리뷰>
약 1주일정도 맥 OS에서, 그리고 윈도우에서 eGPU를 연결해서 이런 저런 게임도 해보고 벤치마크 숫자놀음도 해봤다. 극악의 전성비를 자랑하는 베가64 이지만 언더볼팅을 하지는 않았는데, 맥 OS에서는 그래픽카드 언더볼팅이 안되기 때문에 귀찮기도 했고 그냥 일관성있게 윈도우에서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하는 게임이라고 해봐야 고작 GTA5나 스타크래프트 정도인데 언더볼팅을 하지 않아도 이미 차고 넘치는 성능이다. 내가 하는 모든 게임과 작업이 전혀 문제없이 매끄럽게 잘 됐고 적어도 연결되어 사용하는 도중에는 사용성이 불안하다고 느낀적이 없었다. 얇고 갑갑한 맥북 안에 CPU와 GPU의 열을 식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쿨링 팬이 더이상 우렁차게 돌지도 않는다. 다만 가끔 맥 OS 잠자기에서 못깨어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맥북 뚜껑을 잠시 열었다가 다시 닫아주면 다시 깨어났다.
결론적으로 eGPU에 대한 성능 향상 자체는 매우 만족한다. eGPU 시장이 태동되던 때와 달리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문제점이 집단지성을 통해 파훼법이 마련되었고 생각 이상으로 안정적으로 동작한다. 다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레이저 코어 X의 소음과 베가64의 마력을 50%도 활용하지 못할거면서 냅다 사버린 내 통장 잔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