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PU 리뷰
3. Razer Core X 파워서플라이(PSU) 교체
레이저 코어 X(Razer Core X)와 맥북프로, 그리고 델의 4K 모니터와 함께 사용한 지 어느덧 반년이 되었다. 그동안 여러 번의 macOS 판올림이 있었고 아직 몇몇 버그가 잔재하지만 대부분 해결됐다. 이제 '긱(Geek)'스러운 eGPU는 꽤 쓸만해졌다.
내 좁아터진 책상에 커다란 '27'인치 모니터, '15'인치 맥북, 그리고 현존 eGPU중에 가장 우람한 놈까지 들이치니 책상이 꽉 차 보인다. 책상 위에 텀블러 하나라도 놓는 순간 갑자기 지저분해 보이는 마법이 펼쳐지기도 한다.
공간이야 뭐 그렇다 쳐도 그것보다 참기 힘든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Razer Core X 안에 들어간 기본 파워서플라이(PSU)가 시도 때도 없이 시끄러웠다. 무슨 말이냐 하면, 모든 장치의 전원을 종료하고 단순히 내일을 위해 맥북을 썬더볼트 단자를 통해 eGPU에 연결되어 충전만 하고 있을 때에도 레이저 코어 X의 파워서플라이는 존재감을 뽐냈다. 덕분에 잠귀가 밝은 나는 매번 자기 전 노트북이 완전히 충전되었는지 확인하고, 케이블을 분리시켜 놔야했다.
이게 무슨 짓인가. 한 일주일을 참다가 조용한, 제로팬 기능(일정 전력 소모까지는 팬이 돌지 않는다)을 가진 파워서플라이를 찾기로 했다. 레이저 코어 X를 낙점했던 이유중에 하나가 다른 회사들이 조금이라도 부피를 줄이기 위해 SFX타입의 파워를 쓸 때 쿨하게 ATX타입의 파워를 썼던 것인데 그래서 별문제 없이 가성비가 좋은 녀석으로 구해오려고 했다. 그러나.. 이건 그렇게 간단한 녀석이 아니었다. 뒤늦게 egpu.io에서 다양한 가이드를 읽어본 결과 여러 문제가 있었다.
첫째, 레이저 코어 X에 들어간 파워서플라이는 ATX타입이 맞지만 ATX타입이라고 모두가 같은 사이즈는 아니었다. 사이즈 제한이 있었다. 가로 x 세로 길이가 88mm x 151mm 보다 각각 작아야 했다. 가로가 더 길면 PCB와 부딪히게 될 것이고 세로가 길면 기존에 장착된 팬과 부딪힌다.
둘째, 레이저 코어의 백플레이트를 보면 기존 장착된 파워서플라이의 버튼과 파워 코드 부분이 정확히 들이 맞도록 가공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데스크톱 PC 케이스였다면 구멍을 시원하게 뚫어놨겠지만, 레이저의 의중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저 구멍의 레이아웃과 일치하는 파워서플라이를 찾지 않으면 톱으로 백플레이트 일부를 뜯어내야 했다. 그리고 실제로, 슬프게도 진짜로 그렇게 한 사람을 egpu.io 사이트에 가면 찾을 수 있다.
ATX타입의 파워는 SFX 타입의 파워보다 같은 가격에 훨씬 더 좋은 성능을 낸다. 같은 성능의 SFX 타입 파워는 두 배 정도 비싸다. 그래서 ATX타입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해결책은 다양했는데, 사이즈가 안 맞아서 파워를 eGPU 박스 밖에 놓고 쓰는 사람도 있었고, 앞서 말했듯이 사이즈가 작은 ATX 파워지만 후면부 구성이 다를 경우 줄톱으로 백플레이트를 임의로 가공한 사람도 있었다. 이쯤에서 사이즈도 적당히 작은 ATX타입에 후면부 구성이 기존의 것과 같은 파워는 없냐고 물어본다면 정말 슬프게도 없다고 대답해야겠다.
자. 내가 필요한 파워의 조건을 알아보자.
1. 전기 먹는 괴물 베가 64(Vega 64)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 650W 이상 권장
2. 백플레이트를 톱으로 썰기도 싫고 안 그래도 좁은 책상에 파워를 바깥으로 꺼내 쓰기도 싫다 -> SFX 타입
3. 제로 팬 기능이 지원되어야 한다 -> 비싼 놈
거의 3일 동안 미친 듯이 시장에 있는 파워란 파워는 모조리 찾아본 것 같다. 그리고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커세어(Corsair)의 SF600 또는 SF750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 각각 가격은 $150, $180. 그러다 문득 $299 짜리 eGPU 박스에 겨우 잠자기 전에 케이블 하나 빼는 게 어려워서 절반이 넘는 돈을 파워에 써야하나 생각이 들었다. 혹시 케이블을 낀 채로 자도 '균일한 소음이니 잘만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다가 중간에 결국 뽑고 다시 잤다 ㅎㅎ.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언젠가는 사게 될 것 같아서 그냥 사버렸다. 그래도 양심이 약간 남아있어서 약간 저렴한 SF600 Platinum 모델로 샀다. egpu.io에서 베가 64를 위한 파워로 '600W도 괜찮다' vs '하마를 과소평가하나 본데~' 두 부류가 갈려서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래픽카드 혼자서 500W(맥북으로의 파워딜리버리 100W를 제외한 그래픽카드가 쓰는 전력) 이상을 먹진 않을 것 같아서 600W로 결정했다.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사이즈가 기존 것 보다 매우 작고 기존 고정 브라켓과 호환되지도 않는다. 그래서 단단히 고정할 방법이 마땅치 않는데 해외 유저들은 끈 같은 것을 이용해 고정하던데 나는 굳이 고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집에 두고 쓰는데 뭘. 다만 파워 케이블이 케이스 안으로 약간 쑥 들어가서 웃기긴 하다.
결론은, SF600은 아주 조용하다. 일반적인 온도에서 40% 로드율, 즉 240W까지 팬이 돌지 않는데, 맥북으로 전달하는 100W의 파워딜리버리를 제하고서라도 게임을 제외한 작업에 팬이 전혀 돌지 않는다. 조금 걱정했지만 600W의 파워는 베가 64를 감당하는데 충분했다. 단 한 번도 파워 문제로 시스템이 다운된 적이 없다. 나는 당당하게 맥북을 eGPU에 연결한 채로 잠에 들고 다음날 완전히 충전된 녀석을 들고 등교할 수 있게 되었다. 혹시나 나처럼 소음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파워 교체를 고려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