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등학생들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네이버 또는 구글이 아니라 유튜브(YouTube)에서 가장 먼저 찾아본다고 한다. 바야흐로 유튜브의 시대이다. ‘판도라 TV’를 기억하는가. 유튜브의 폭발적인 성장 이전에 한국에도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이 있었지만, 당시 동영상 플랫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는지, 당장의 이익에 급급했던 근시안적인 운영으로 국내 업체들은 경쟁력을 잃어갔다. 결정적으로, 국내 기업이라면 지켜야 하는 법을 국산 플랫폼이 온갖 저작권을 준수하고 방송사의 '갑질'에 고분고분할 때, 해외 기업들은 서버가 국내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고 수많은 저작물의 동의 없는 재배포를 통해 무섭게 성장했다. 현재 유튜브의 빛이 나는 성장 가도에 비해 국내 플랫폼들은 근근이 입에 풀칠만 하는 수준이다.
이제는 유튜브의 적수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데, 나는 점점 늘어나는 유튜브 광고의 길이로 유튜브의 승리가 거의 굳어져 간다는 것을 짐작한다. 동시에 개인 방송 플랫폼인 아프리카TV가 비슷한 이유로 경쟁력을 잃지 않을까 걱정된다. 소비자야 좋은 서비스를 이용하면 그만이라지만,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우리나라에 재분배할 가능성이 높은 토종 기업들을 나는 응원하고 정부가 ‘어느 정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이 한창인 지금, 과연 미국이 지금 일본에게 비슷한 제재를 한다면, 인구의 과반수가 ‘아이폰’을 사용하고 물류는 ‘아마존 재팬’이 꽉 잡고 있는 미국 기업을 상대로 일본 국민들이 감히 불매운동을 할 수 있을까.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지만 모두 가치 있듯 자유무역도 중요하지만 상충하는 보호무역도 자국 산업을 보호한다는 면에서 못지않게 중요하다. 위험한 것 투성인 이 세상에 태어난 갓난아이를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지켜주는 어머니와 모성애가 있듯, 신생 기업에게도 모성애가 필요하고 국가가 이를 보호해야 한다. 그런면에서 유튜브의 성장이 내심 아쉽다.
뭐가 됐든 간에, 자유 무역의 산물인 유튜브가 세계의 경계를 허물어 놓은 것은 좋은 사실이다. 그리고 유튜브를 통해 한국인을 기쁘게 하는 말을 하며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을 알아차린 외국인들은 재빠르게 세를 넓혀갔다.
유튜브에 이 외국인들이 한국 수능을 푸는 영상은 꽤 단골 주제인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이 이 주제에 큰 흥미를 느끼는 이유를 두 가지라고 생각했는데, 첫 번째로는 우리가 평생을 공부하는 영어 시험에 대한 원어민의 반응이 순수하게 궁금했을 것이고 두 번째로는 이 시험이 기형적인 난이도를 가졌다는 사실을 외국인에게 인정받아 한국 교육을 비판하는 내용을 기대하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주요한 여론은 (외국인과 말하는 것과 같은) 실용적인 영어를 배우지 않고 심지어 영어가 모국어인 외국인조차 틀리는 수능 영어에 대한 비판이 우세하다. 나도 일부는 동의한다. 모국어 화자조차 틀리는 문제는 수학(修學) 능력을 측정한다는 시험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본다. 현지인이 잘 쓰지 않는 표현과 단어를 의도적으로 넣어 틀리게 한다면, 시험의 본 목적을 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수능 영어 영역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은 답할 수 있다. 수능 영어 영역이 대학에서 배울 학업의 역량을 측정한다는 것의 일환이라면, 지금 방식이 어쩌면 가장 공정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인재를 선별함에 있어서 공정함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 않나. 조선 시대 계층 간의 사다리가 되었던 과거제의 실력으로 사람을 뽑는다는 핵심 의의를 우리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어느 새부터 국가적으로 실시하는 학업 성취도 평가가 ‘일제(一齊)고사’라는 별칭으로 나쁜 인상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마치 이 시험이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개개인이 가진 엄청난 잠재력을 깡그리 무시한 채 성적으로 줄 세워 단색의 학생을 양성하는 듯 그렸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에서 실제로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고 한다.
아주 잘못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표준화된, 양질의 데이터를 제공했던 일제고사가 폐지된다면 이제 교육 정책 수립에 활용되는 자료는 어떻게 얻을 것인가. 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은 단순히 고소득자에게 누진적인 소득세를 매기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계층간 소득을 분석해서 그에 맞는 정책을 수립하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범국가적인 시험을 통해 학업 수준이 미진한 지역에 지자체가 더 많은 지원을 가능케 하는 좋은 뒷받침 근거를 없애버린 셈이다.
두 번째로는 학생들의 객관적인 성적 수치를 보는 것이 잘못된 방식이었나에 대한 의문이다. 개별 학생의 가치를 무시하고 점수화해 대학에 보내는 기존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후발주자였던 우리나라가 유럽의 '선진' 교육을 받은 인재들을 제치고 경제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겠으며 수십 배의 인원을 더 일제히 평가하는 가오카오(高考)를 가진 중국은 어떻게 21세기 들어 연평균 10%에 달하는 경제 성장률을 달성했겠는가. 혹자는 말한다. ‘지금까지는 구시대적 방식이 통했을지 모르나 앞으로는 창의성 있는 인재들이 필요할 것’
과연 현재처럼 수능 범위를 야금야금 줄이고, 종국에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처럼 평가자의 주관이 들어간 입시 제도가 그 정답일까. 적어도 종국에는 수시로 바꾸려는, 다시말해 수능의 영향력을 점점 줄여나가는 현재 방향에 나는 매우 동의하기 어렵다. 학교생활의 '부담'을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모를까, 만약 더 나은 인재를 선별해 거시적인 관점의 한국을 발전토록 한다는 것이 목표라면 정답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항상 모범 예시로 등장하는 그 프랑스마저 불공정의 벽에 부딪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칼로레아의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했다. 공정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서양의 교육이 옳은 방식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적어도 그들의 교육 제도가 어떠한 정량적인 성과를 냈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수능 영어로 돌아오자. 공정성을 훼손하지 않고 전국에 있는 수십만의 학생들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말하기 시험을 포함해야할까? 외국인 평가자가 회화 능력을 측정해야하나? 말하기 시험을 보자고 한다면, ‘대본을 외워서 대본이 아닌 것처럼 말하는 법’을 알려주는 수많은 영어 말하기 어학 성적용 학원을 보면 사교육 시장을 기를 뿐이라는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사교육'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한데 말하기 또는 영어 회화를 평가하기 위해 교육이 방향을 정해갈수록 돈으로 원어민과의 시간을 살 수 있는 사교육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이고 이는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꾸면서까지 사교육의 개입을 줄이려는 정부 취지와 크게 어긋난다. 외국어를 배우기 가장 좋은 환경은 해당 언어에 가장 노출이 많이 되는 것이고 상위 계층의 자녀가 이 환경에 인위적일지라도 노출될 가능성이 높음을 모두 동의할 것이다. 만약 수능이 계층 간 사다리의 역할이라면 영어에 노출되지 못할 이들을 위해 회화 영역은 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결국 남은 것은 듣기와 독해뿐이다. 원어민 없이도 모두가 미리 녹음된 음성을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들을 수 있고 학원에서 가르친다 한들 본인이 곱씹어 봐야 할 여지가 많은 독해는 사교육의 개입이 상대적으로 적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능과 같은 표준화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공정성이 제일 쉽게 확립된다. 정답을 고르면 맞는 것이고 오답을 고르면 틀리는 것이다. 결과에 대한 지분을 본인이 고스란히 소유하게 된다. 더불어 수능은 대학에 갈 준비가 되었는지 묻는 시험임을 잊지 말자. 세간의 인식과는 다르게 수능 영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읽기 영역이 대학에서 어쩌면 가장 실용적인 부분이다. 수능 영어를 제대로 공부했다면, 수많은 지문을 읽으며 향상된 어휘력과 독해력으로 대학에 와서 영어로 된 전공 서적을 읽는다던가 (특히 내가 배우는 공학의 경우 원문 서적을 필연적으로 읽어야 하는 상황이 잦다)—하는 것에 있어서 꽤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교사의 재량에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서양식 교육에 비친 한국 수능 영어는 기형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관점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절대 나쁘지 않다. 다만, 어쩌다가 이런 ‘기형적인’ 시험이 나오게 되었는지, 그들의 방식이 정녕 옳은 것인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수능 영어는, 아니 수능은 단순히 학업 실력을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다. 인재가 절실했던 산업화 시기의 한국이, 또는 현재의 중국이 이런 제도를 채택했던 까닭이 있을 것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수능이 가진 계층 간 사다리의 역할이 그 이유이며 ‘해외파’들로부터 토종 수험생들을 지키려는 보호무역의 가치가 내재하였음이 그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