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입사한 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입사한 이후로 회사의 일이 곧 나의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따로 자기 계발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좋은 핑계로 책도 더이상 읽지 않았고 글쓰기도 멈췄다. 돈맛을 알아버린 이상 대가 없는 공부는 하지 않게 됐다. 왜 이렇게 됐을까. 마치 가축화된 동물이 야생성을 잃어버린 것처럼, 취업을 하고 나니 인생의 ‘다음’이란 목표의식 없어져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자가진단을 내렸다. 나태해진 나를 반성하며 인생의 ‘다음’을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던 내 격정의 대학 졸업 시즌이 생각났다. 최종 입사 결정을 하고 내 결정을 합리화했던, 2년 전에 썼던 글이 클라우드 구석에 남아있어 잠 안 오는 밤에 글을 완성했다.
2년 전 2020년. 졸업 연도를 맞은 나는 정말 많은 것을 준비하고 고민이 많았다. 우선 학기 초, 부족한 학점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험 기간이 아닐 때도 매일 도서관을 가고, 시험 기간 2주간 하루 평균 열 네 시간을 도서관에 있었다. 딴짓을 많이 해서 내 공부 효율이 안 좋다는 것을 알기에 물량으로 밀어붙였고, 아쉽게 장학금은 놓쳤지만 모든 과목에서 좋은 석차로 만족하는 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
불과 그 해 1학기가 종강하는 그 날까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나에게는 고민할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는데, 국내 기업 취직, 국내 대학원 진학, 해외 대학원 진학이 있었다. 아버지의 강력한 추천도 있었고, 나도 세 가지 선택지 중에 어느 것도 좋지도 싫지도 않아 우선 준비가 가장 많이 필요한 해외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기로 했다. 먼저 국내 또는 해외 대학원 진학을 위해서 영어 성적이 필요했는데 둘 다에 써먹을 수 있는 토플 준비를 했다. 토익 960점, 오픽 AL을 따로 준비하지 않고 취득했던 기억 덕에 오만하게 되어 토플도 설렁설렁 공부했는데 그 자만심에 걸맞게 형편없는 점수를 받게 됐다. 부끄러웠지만 별수 있나, 시간이 촉박했다.
바로 그 후 미국 대학원을 가는 데 필요한 시험인 GRE(Graduation Record Exam)를 방학에 준비했다. GRE는 정말 난이도가 극악이었는데, 영어로 된 사자성어를 억지로 외우는 기분이었다. GRE에만 사력을 다해도 좋은 점수가 나올까 말까 한 시험인데 다시 말하지만 나는 해외 대학원에 간절하게 진학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고민의 선다지를 늘리기 위해 한 것이었다. ‘지랄이’라는 별명답게 얄팍한 동기부여로 짧은 기간 안에 잘 볼 수 있는 시험은 아니었다. 덕분에 그저 그런 성적이 나왔다. 내 토플과 GRE 성적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미국 탑스쿨 대학원을 희망하는 지원자들의 평균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였다.
토플과 GRE 성적이 경쟁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다른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나는 학점(GPA)이 4.0 기준으로 3.3이었고, 이는 탑스쿨 대학원을 희망하는 지원자들의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왜 눈을 낮추지 않았느냐면, 내가 생각하기에 대학원이라는 긴 대장정을 그것도 미국으로 진학하려면 적어도 탑스쿨(Top 20)은 가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적어도 앞선 시험들에서 훨씬 경쟁력 있는 성적이 필요했다.
미국 대학원을 준비하며 나는 나의 ‘적당히’의 늪에 빠져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던 것 같다. 내가 적당한 학벌, 적당한 학점, 적당한 영어 성적 등 뭐든지 적당한 것에 만족하면서 사는 와중에 우리나라에는 정말 멋지게 살아온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CV에 녹여내면 미국 대학원을 진학한 사람들에 비해 정말 보잘것없었다. 물론 학점도 엄청나게 높아야 하지만, 미국 탑스쿨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들에게 고학점은 그냥 당연한 것이었고 그 이상의 무언가 대단한 매력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유학을 가게 된다면, 모국어가 아닌 환경에서 최소 7년간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연구에 몰입해야 할 것이었고 내 경쟁자들은 다들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나의 경쟁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내가 그 오랜 기간동안 타향살이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들이 나에게 앞으로 7년간 엄청난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가져다줄 텐데 나는 그것을 감내할 만큼의 동기부여가 되어 있는가. 고민이 GRE를 준비하며 계속됐고, 결국 토플과 GRE 성적에서 불안함을 보여준 후 유학 포기로 이어졌다.
어찌 되었든 간에 8월 말, GRE 시험을 마무리하고 그래도 토플과 GRE 성적이 있으니 내가 마음만 먹으면 나중에라도 미국 대학원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 대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자대(한양대) 대학원부터 시작해 카이스트, 서울대에 메일을 돌렸다. 물론 대학원생이 연구실의 소속 대학보다는 연구 역량을 중점으로 봐야 하지만 나는 석박의 긴 기간을 마치고 난 후 당신이 눈에 띄는 연구자가 아니라면, 단순히 대학의 색깔로 시선이 달라진다는 것을 아버지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다. 후술하겠지만, 나에게 대학원은 인생의 수단이었다. 고민 끝에 자대 대학원은 포기했다. 그 후 카이스트/서울대에, 진학 분야는 ECE(Electrical Computer Engineering)으로, Computer Architecture에 관한 연구실 위주로 컨택했다. 아무리 대학 간판이 좋다지만 그렇다고 연구 주제가 맞지 않거나 김박사넷에서 너무 평가가 좋지 않은 랩은 피하려고 했다. 나는 중학교 때 3년간 혼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한 하나의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본 경험이 있고, 이 분야(ECE) 자체를 학업 외적으로도 관심이 있어 많은 잡지식을 아는 강점이 있었기에 이를 주로 어필했고 좋은 전략이었던 것 같다.
KAIST에서는 교수님 한 분이 적극적인 관심을 주셔서 메일도 주고받고 긍정적인 신호가 오갔었는데, 결국 낮은 학점 덕에 KAIST의 입시를 뚫지 못하고 서류에서 떨어졌다. 서울대학교에서는 한 곳에서 완곡한 거절의 메일이 왔고 두 곳에서는 묵묵부답 형식의 거절이 왔다. 숨죽이던 순간, 마지막 한 곳에서 면접을 보자고 하셨다. 면접에서는 메모리 계층 중 Cache의 역할에 관해서 물어보셨고 과거 Cache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혼자 열심히 찾아본 경험이 있어서 내가 생각해도 정말 자세할 정도로 답했더니 150점짜리 답변이라고 칭찬해주셨다. 더불어 연구실에서 가장 밀고 있는 주력 분야 두 개의 논문을 찾아서 읽고 요약해갔는데 핵심만 잘 요약했다며 좋게 봐주셨다. 면접이 끝나고 몇 시간 후 연구실 배정 통보를 받았다. 뛸 듯이 기뻤다. 서울대학교는 교수님과의 컨택이 입시의 거의 90%라서, 그 이후에 있었던 서류전형이나 구술고사는 큰 부담 없이 진행해서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지인들과 가족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고 몇 주간 기뻤다. 미국 탑스쿨 대학원만큼의 명성은 아닐지언정, 서울대학교는 우리 할머니도 아는 국내 최고 대학교였다. 게다가 가족과 친구들을 자주 볼 수 있고 난 외롭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대학원을 가야 하는가? 그 흔한 학부 연구생, 포스터 발표 한 번 해본 적이 없었고 나는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박사는 인류 지식의 끝단에서 그 기여도가 작을지언정 인류의 한계를 넓혀가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뭐, 어떻게든 내가 잘하는 '버티기'를 통해 박사 학위는 언젠가 받을 수 있겠지. 그런데 진학도 전에 대학원 진학 후 따라오는 보상만을 집요하게 조사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지식의 한계를 넓혀가는 것보다, 그저 박사 학위 이후의 더 나은 기회를 원하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 고민이 됐다. 사실 이런 '속물적인 생각'을 피해 취업을 선택한 지금의 결정이 너무 낭만적인 결정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연구실 배정까지 마쳐 진학 예정이었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와중에 하나둘 취업 공고가 올라왔다. 최대한 많은 카드를 쥐고 나중에 고민하고 싶었다. 교수님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그래도 취업에 실패하더라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점이 있기에 남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직무 위주로 쓸 수 있었다.
나는 2년간 교내 기자단 활동을 했다. 주된 활동은 인터뷰할 위원과 약 한 시간 가량의 대화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술술 읽히는 글'로 편집하는 일이었다. 평소에도 가독성 좋은 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고 더불어 기자단 경험 덕에 자기소개서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사실 아무리 글솜씨가 뛰어나다 한들, 결국 이야기를 구성하는 본인만의 맛깔난 재료가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나는 대학원 컨택 때부터 죽어라 써먹었던 중학교 3년간 프로젝트를 주로, 그리고 교내 기자단 활동과 DRAM 취약점에 관한 졸업연구를 자기소개서에 적어냈다. 약점인 학점도 말아먹은 1학년 학점을 제외한다면, 전역 이후 정신 차린 이후의 평균이 4.0에 가깝다는 점을 어필했다. 나는 내 주제들을 가지고 글을 버무려내며 반신반의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좋은 재료들이었던 것 같다. 모든 기업을 연구 개발직(회로설계)으로 지원했는데 내 학점은 해당 직무 지원자 평균보다 썩 매력적인 학점은 절대 아니었다. 그래도 직무를 타협하고 싶지는 않았고, 소신 있게 적어냈다.
희한하리만치 내 학점에 비해 서류에서 떨어지는 일이 없었고 서류는 합격하되 면접을 추려 준비해야 했던 상황 때문에 죄송하게도 면접에 불참해야겠다는 메일을 돌리는 과분한 상황까지 연출되었다. 그리고 최종 면접에 참석했던 하이닉스, 삼성전자에 모두 최종 합격했다.
며칠간 밤을 새운 끝에 나의 긴 진로 유보를 끝마쳤다. 나는 서울대학교 석박통합과정을 포기하고 삼성전자로 취업을 선택했다.
미국 대학원 준비를 하며, 국내 대학원 준비를 하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취직 준비를 하며 느낀 점이 있다. 나의 '스펙'은 구직 시장에서는 꽤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 학벌, 적당한 학점, 높은 토익과 오픽 성적, 다양한 대외활동은 나의 경쟁 지원자들 평균보다 적어도 떨어지는 것은 없었다. 내가 면접 본 세 곳 모두 다 나의 스펙에 대해서 꼭 칭찬하고 넘어갔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해준 곳도 있었다. 그런데 대학원으로 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서울대학교, 카이스트와 같은 대학원에서 내 학벌과 학점은 경쟁력과는 거리가 멀다. 그나마 영어 성적과 내 경험들을 좋게 봐준 분들이 있긴 했지만, 턱걸이의 느낌이었다. 미국 대학원은 준비 자체로 자존감을 낮게 해주었다. 내 모교에서 미국 탑스쿨을 희망한다면 대부분 수석/차석 졸업자였고 영어/GRE 성적도 나보다 높은 경우가 많았다. 취업 시장에서 3.67이면 나쁘지는 않은 학점이라고 불리지만, 미국 유학 시장에서 3.67은 다른 큰 매력이 있어야 하는 치명적인 단점인 수준이었다. 취업 시장에서 토익 960점, 오픽 AL은 높은 어학 성적이지만 유학 시장에서는 쳐주지도 않은 점수일 뿐이었다.
미국 유학 준비자들 기준으로 나는 대학 생활을 굉장히 게을리 한 부류에 속하게 되었다. 스스로를 그런 틀에 가두고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내가 학업을, 대학 생활을 치열하게 했는가? 다른 지원자들에 비하면 전혀 아니었다! 한 선배의 미국 탑스쿨 대학원 합격 후기를 읽으며 그 사람이 진행한 졸업작품 프로젝트에 말 그대로 감탄을 그지 못했다. 그리곤 똑같은 기간을 누군가는 정말 알차게 썼구나,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이 들면서 점점 비참해졌다. 그런데 대기업 취직이 확정된 이 시점, 모두 나의 이력을 보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 고생했다며 엄지를 치켜세워준다. 대기업 취업자들을 깎아내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노력'이라는 것은 굉장히 관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높아진 자기객관화가 내 세 마리 토끼 잡기 프로젝트의 수확이 되었다. 나는 생각보다 내 학점에 비해 훌륭하게 살아온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과 동시에 나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가끔, 박사과정에 진학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 적이 있다. 삼성전자의 임원들이 대부분 박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가끔 멋진 논문을 학회에 자랑스레 발표한다던가,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등 내가 좋아하는 이 분야에 한 발짝이나마 기여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번복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후회하게 만드는 높은 학위의 면면이 나를 좋은 연구자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연구자보다는 박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도 회사는 나 같은 학사 졸업자도 기회가 없다고 느끼지 않게 해준다. 간간이 학사/석사 출신 임원도 보인다. 좋은 소식은, 내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학/석/박이 크게 의미가 있지는 않다. 내 분야는 컴퓨터공학(Computer Science)과 비슷한 분야로 프로젝트 경험, HW/SW에 대한 이해도가 학위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만족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분야의 적성도 맞지만, 부서의 사람들이 아주 합리적이고 똑똑하기 때문이다. 선배들은 지식과 노하우가 풍부하다. 새로 배우는 신입이 귀찮을 만 한데도 불구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알려준다. 나만의 길이 있을 것이다. 나의 가치를 알아봐 준 회사에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내가 진로에 대해 한창 고민하던 시절, 주변에 박사 학위자가 많은 아버지가 사람을 만나는 자리마다 아마 기억상 총 한 열 명에게 질문했다고 한다. 최종학력이 학사 졸업인 사람한테는 학사 졸업해서 후회하지 않는지, 박사 졸업인 사람에게는 박사를 진학한 것이 잘한 결정인 것 같은지 물어봤다고 한다. 재밌게도 모두 후회한다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학사 졸업인 사람은 나와 같은 이유로 7년간의 이른 사회생활로 인한 이득과 박사 학위에 대한 불필요함을 말했고, 박사 졸업인 사람은 박사졸업 후 온 기회들과 거기서 배운 것들이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역설했다. 모두 자신의 인생을 반하지 않은 것이다. 아직 일 년하고 반밖에 안 됐지만 왜 그랬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도 내 선택을 부정하지 않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