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연말이다. 모레면 수능을 본단다. 그렇게 가슴을 졸이며, 모든 삶이 결정되는 날인 것이라고 여겼던 수능이 올해도 어김없이 온단다. 영원히 나는 보지 않을 것 같았던 수능을 보고, 대학에 오고, 새로운 환경에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벌써 11월이다. 누가 고삼의 시간이 가장 빠르다고 했는가. 대학생의 시간도 만만치 않게 빠르다!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평가를 치르고 나서 환호성을 지른 고삼. 고삼이라는 딱지가 부담감의 상징에서 해방감의 상징이 되며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그 시기. 방학 직전까지 '사고만 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된다'라는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매일매일이 흡사 PC방을 방불케했다. 시끄럽지도 않았다. 다들 자신만의 스크린 속에 한껏 빠져 누구는 밀린 드라마를 몰아 보고, 누구는 마우스가 부서질 듯이 게임을 해댔다. 가끔 노트북이 버거운 게임에 못이겨 우렁찬 팬소리를 내도 뭐라하는 사람 하나 없었다. 우리는 수능 끝난 고삼이니깐. 하지만 이런 생활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진절머리가 나고 말았다. 모니터를 하루종일 뚫어져라 바라보다보니 등허리가 쑤시고 머리가 아파왔다. 그 때서야 하나둘씩 생산적인 일을 계획하기 시작한다. 기특하게도 운전면허를 따러 가고, 누구는 최소한 컴퓨터가 아닌 놀이가 필요하다며 당구를 치러 가고, 또 다른 누구는 운동을 하고 싶다고 체육관을 끊는다.
그러다가 수많은 '할 수 있는 것'들 중 그 시기만의 의미가 있는 것을 찾아냈다. 스무살이 되는 해의 첫 해돋이를 보러 가는 것! 말만 들어도 엄청나게 의미가 있는 행동인 것 같았다.
생각이 비슷한 놈 하나, 별 생각이 없는 놈 하나와 같이 버스티켓을 끊어 정동진으로 향했다. 그런데 2015년 1월 1일은, 비단 20살의 첫 해가 뜨는 날 만이 아니었다. 청소년의 딱지를 떼고 합법적으로 음주가 가능한, 바로 그런 날이었다! 갓 스무살의 청춘 셋이 새벽 다섯시 반의 일출을 기다린다.. 입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정답이 나온다. 부어라!! 마셔라!!
어찌나 마셨는지 밤새 헤롱헤롱댄 기억밖에 없다. 강원도의 밤 공기는 또 어찌나 차가운지.. 추위를 피해 어디든 들어가고 싶은데 PC방은 모두 문을 닫고 찜질방이라고는 보이질 않았다. 일단 시간이 다가오니 택시를 타고 해돋이를 보러 가기로 했다. 어질어질하게 잡은 택시안에서 기사님이 하는 말, '정동진 보단 경포대가 낫지~'. 현지인의 말만 믿으면 장땡이다. 바로 경포대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우릴 맞은 것은 살을 애는 새벽 겨울의 칼바람. 어디든 들어가야 했기에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편의점도 우리와 같은 무리를 예상이라도 한 듯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편의점은 대단히 얼음장이었다. 더이상 갈 곳 없는 우리는 그렇게 얼음장같은 편의점에서 두어시간을 더욱 기다렸다.
드디어 해가 뜨려나 보다. 밖이 시끌시끌해졌다. 편의점 구석에서 추위를 피해 웅크리고 있던 우리는 반갑게 뛰어나갔다. 분명 편의점에 들어오기 전에는 사람이 없었는데 귀신같이 해 냄새를 맡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수능이 끝났다. 학창시절도 끝났다.
온갖 잡다한 새로운 의미를 마구 부여한 새 해를 술기운에 맞으며 무언가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새로운 의미를 가지는 날은 잊기 힘든가 보다. 열 달이 조금 넘게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