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가기 위해서 휴학을 했는데, 딱히 할 것도 없고 해서 영어학원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옆에 앉아서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를 제대로 하는지 아닌지 감시하는 조교 역할이 아니라 진짜 원생들을 가르쳐야하는 일이었는데 운좋게도 경험 한 번 없는 저를 뽑아준 원장님 밑에서 한달여 정도 일했습니다. 돈이 모였으니 여행을 가야겠죠. 그리 큰 돈을 모으진 못했으니 동남아시아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나라를 미리 갔다왔더군요. 다녀오지 않은 나라 중 후보 세개를 뽑았습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대만. 원래 혼자 가려고 했었는데 이 중에서 가장 인프라가 좋은 대만으로 최종 선택합니다.
<대만의 국부, 장제스>
대만은 정말 흥미로운 나라입니다. "대만은 정말 흥미로운 나라입니다"라는 말을 시작하는 것 조차 논쟁거리가 되는 곳이니까요. 국제 사회에서 대만을 정식 국가로 인정해 주는 나라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1992년 국교를 단절했죠. 대만의 국부, 국민당의 장제스가 본토에서 도망치듯 나와 건국한 대만의 정식 명칭은 '중화민국'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나요? 바로 옆나라 중국의 정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입니다. 뭔가 여기서 우리나라의 국호인 '대한민국'을 짬뽕 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들었다면, 정확히 보셨습니다. 우리나라의 영어 명칭은 'Republic of Korea'이죠. 대만의 영문명 또한 'Republic of China'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대만의 국호에 대해서 설명하는 이유는, 대만이 바로 민주주의화된, 선진화된 중국인 것을 강조하고자 함입니다. 이러한 대만의 특수성으로 인해 생기는 재미난 점이 많은데, 후술하도록 하겠습니다.
비행편은 대만 국적기인 중화항공 편으로 예매했습니다. 중화항공의 영문 명만 보면 China Airlines 이기에 사람들이 약간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은데, 절대 '중국남방항공' 같은 본토 항공사와 비슷한 급이 아닙니다. 예매는 중화항공으로 했지만 대한항공과 코드 쉐어를 하고있는 편이여서 들어가는 편은 대한항공편, 돌아오는 편은 중화항공 편이였습니다.
대한항공 국제선은 정말 오랜만에 탔는데, 다른 항공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과잉 친절을 배풀어줍니다. 친절하다고 나쁠 것은 없지만,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짧은 비행 후 내린 타오위엔 공항. 공항의 대륙 스케일을 보면서 대만사람들의 혈통을 상기시킨 후, 준비한 미국 달러(USD)를 대만 달러 (NTD)로 환전하고, 현지 통신사 유심을 구매합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타이페이 중심가에서 내렸습니다. 예약한 에어비엔비 숙소를 가던 길에 찍은 도로입니다. 대만은 아시아에서 몇 안되는 친일 국가중 하나죠. 일본 차가 많아서 그런지, 일본 느낌이 많이 납니다.
사진으로만 봐도 습해보이는데, 5월 말의 대만 날씨는 30~35도 정도의 날씨에 미칠듯한 습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만에 있는 내내 거의 아이스크림 녹듯 땀을 흘려내렸는데, 한여름이 되면 40도에 가까워 진다고 합니다. 대만을 비롯해 적도 부근의 나라는 절대 여름에 가면 안된다는걸 다시금 다짐했습니다.
숙소 앞에서 찍은 타이페이 101. 높이도 높이지만 '중국스러움'을 간직한 모습이 돋보입니다.
숙소에서 짐을 풀자마자 허기를 달래러 1층에 있는 음식점에 가서 우육면을 시켜먹었습니다. 대만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 중 하나입니다. 중국 북경을 한번, 연길 지방을 한번 다녀왔었는데 음식이 너무 입에 안맞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남부 지방이나 대만 음식은 향신료를 많이 쓰지 않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육면을 먹은 이 집은 동네 소규모 음식점이었기 때문에 영어는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대만은 교육 수준이 높지만 생각보다 다들 영어를 상당히 못합니다. 동행한 누나가 중국어를 하지 못했다면 먹어보지 못했을 음식이 정말 많습니다. 길도 많이 헤매어 고생했겠죠.
우육면을 맛있게 먹고 여행 계획을 현지에서 짜기 시작합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우육면을 먹기 전까지 정말 아무런 계획이 없었습니다. 여행 가기도 전에 계획 짜느라 스트레스 받기 보다는 물어볼 용기만 있다면 현지인 말을 듬뿍 참고해가며 하루하루 대강 큰 틀을 짜는게 더 재밌는 것 같습니다. 장소에 구애받으면 안되기에 4박 일정에서 숙소는 첫 이틀만 예약하고 왔습니다.
그렇게 첫 일정은 야시장 탐방입니다. 대만은 집에서 요리를 해먹기 보다는 사먹는 문화가 발달했는데, 덕분에 외식 비용이 꽤 저렴하고 야시장이 발달했습니다. 한국의 야시장 하면 떠오르는 노량진에 있는 그것들 보다 대만 야시장이 규모가 더 크고 많이 있다는 점이 다르겠네요.
대만 야시장은 중국처럼 벌레튀김 같은 것들은 안보이더군요. 여기서 정체불명의 재료들이 들어간 군것질을 많이 했습니다. 아래는 정체불명의 속으로 이루어진 버거. 먹을만 했습니다.
아래는 정체불명의 건더기와 소스로 이루어진 짜장떡볶이 비슷한 맛이 나는 음식입니다. 맨 위에 있는 정체불명의 양갱같은 것이 식감이 참 진득하니 불쾌한게 무슨 재료로 만들었는지 무섭더군요. 모르는게 약이거니 하며 다 먹었습니다.
알 수 없는 음식 시도도 좋지만 맛이 보장된 음식을 넘길 수는 없죠.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만두도 먹었습니다.
허기를 채우고 다음 이동한 곳은 샹산입니다. 잘 모르겠지만 '샹'이 코끼리 상 자인걸 봐선 뭔가 코끼리를 닮은 산인가 봅니다. 산 꼭대기까지 오르는 계단을 찍었어야 했는데 정말 아쉽네요. 섭씨 30도가 넘는 밤에 체감상 한 50층정도 올라간 것 같았습니다. 내려올 때 다리가 후들거리더군요. 야경은 정말 멋지긴 했습니다만, 싫어하는 사람이랑 같이 샹산가서 계단 밑에서 슬쩍 밀면 최소 반신불구입니다. 참고하세요.
타이페이 101까지 보고와서 첫째 날을 마감합니다. 어찌된 일인지 오후에 갓 도착한 첫날을 가장 알차게 보냈습니다.
2부작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내용이 길어졌네요. 경상도 만한 크기에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정도가 사는 대만. 대만은 그들의 경쟁력에 비해서 국가 인지도가 상당히 낮습니다. 태국이랑 대만이랑 헷갈려하는 사람도 정말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만은 한국에 대해 굉장히 경쟁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90년대까지 대만이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싱가폴, 홍콩, 대만, 한국'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면 대만에서 왜 우리나라를 그렇게 들먹거리며 비교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국말을 잘하는 대만 대학생을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던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