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대는 달리기를 참 좋아했다. 무려 일주일 세 번 월, 수, 금이 달리는 날이었다. 근력운동을 더 싫어했던 나는 이 ‘차악’을 선호했다. 갓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 우리 중대에서 ‘카투사는 잘 뛴다’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미군들보다 체구가 작은 우리는 거대한 타이어는 못 들어도 체대 출신 선임을 필두로 달리기만큼은 미군들을 저만치 따돌릴 정도로 잘했다. 평판이 뿌듯했는지, 선임들은 이 전통을 지키고자 갓 자대배치 받은 이등병도 잘 뛰길 바랐다. 덕분에 나의 수준과는 상관없이 알파, 브라보, 찰리로 나뉜 수준별 달리기 그룹에서 달리는 날만 되면 이름값을 해야하는 알파 분대로 편입됐다.
고등학교 때 했던 체력검정. 1.5km 오래달리기를 떠올리면 정말 힘들었던 기억뿐이다. 달리기라는 것은 정말 힘든 것이구나 깨달았다. 그리고 육군훈련소에서의 3km 달리기. 역시나 힘들었다. 십 몇분 내내 달린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술 더 떠 후반기 교육이었던 카투사 훈련소에서는 매일, 5km 남짓한 거리를 달렸다. 화룡점정으로, 자대에서는 7km 남짓한 거리를 최대 일주일에 세 번, 그것도 가장 빠른 알파 분대에서 달렸다. 거쳤던 환경들이 천천히 거리를 늘려준 덕분에 불가능할 것 같았던 알파 분대를 어떻게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여태까지 나는 이 먼 거리를 단체 활동의 일환으로 어쩔 수 없이 뛰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운동을 미치도록 싫어하던 한 이등병은 그다음 날 있을 ‘차악’을 자신이 은근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래 달리고 난 이후 시원하게 땀을 뺀 그 이등병은 어떤 성취감을 느꼈다. 다리가 아프고 가슴이 조여오고 숨이 가파른 과정들을 이겨낸 자신이 대견해진 것이다. 어떤 해군 제독이 연설에서 강조한 이불을 개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작은 것의 성취’의 참된 의미를 달리면서 드디어 깨닫게 된 것이다.
사실 달리기를 하면서 좋았던 것은, 무엇보다도, 달리기를 하면서 드는 온갖 생각들이 꽤 재밌었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당장의 고통보다 더 중요한 것, 또는 재밌는 것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 생각하면서 고통을 우선순위 밖으로 몰아낸다. 기분이 좋을 때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내달리고, 고민거리가 있어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또 그 나름의 중요한 생각을 하면서 처절히 달리는 것이다. 군 생활은 이렇게 나에게 달리기의 재미를 알려줬다. 전역하고서도 심심할 때나 기분이 꿀꿀할 때, 나는 학교 앞 중랑천을 뛰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마라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중대장은 키가 큰 백인이었는데, 소위 말하는 거미형 인간이었다. 뭘 먹는지 배가 유난히 불룩한데 팔은 신기하리만치 얇아 군인이라면 해야 하는 체력검정에서 팔굽혀펴기랑 윗몸일으키기를 항상 아슬하게 통과하던 그였다. 옆에서 푸시업 하는 것을 흘긋 보고 있자면 팔의 힘으로 몸이 올라가는지 뱃살의 반동으로 몸이 올라가는지 갸우뚱할 정도였다. 가까스로 두 종목을 통과한 멋쩍은 미소의 중대장에게 남은 마지막 검정은 2마일(3.2km) 달리기. 그런데 길고 곧게 뻗은 두 다리로 달리기만큼은 정말 중대의 장(長)이었다. 타조 같은 두 다리로 그는 중대에서 가장 빠르고 오래 달릴 수 있었다.
오전 여섯시 반. 모두들 졸린 눈을 비비는 아침 PT 시간. 피곤함을 떨쳐보려는 어두운 표정의 다른 군인들과 다르게 본인이 가장 잘하는 달리기에 집착하던 중대장은 달리는 날만 되면 어쩐지 기분이 좋아보였다. 근질근질한 두 다리를 내딛고 싶은지 준비 운동을 후딱 해치우는 동안 쉴새없이 다리를 놀렸다. 이 러닝 광(狂) 중대장이 가끔 심술이 나서 달리기 코스를 엄청나게 길게 잡을 때가 있었다. 어쩌다 10km를 달릴 때도 있었다. 중대장의 그런 못된 장난이 있는 날은 정말 만신창이가 되어 온종일 몸이 들쑤시고 피곤했다. 10키로. 10키로가 그랬다. 10분 이상 달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나만의 공식인데, 달리기는 거리에 비해 난이도는 가파르게, 제곱해서 올라간다. 근육에 피로도가 누적되어 출발선의 발디딤과 결승선의 발디딤이 달라지거든. 재빨리 이 기막힌 공식에 숫자를 대입해보았다. 풀 마라톤인 42.195km은 미친 짓이었다. 도전도 좋지만 자기객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래서 적당히 도전할만해 보이는, 너무 적지도 않고 쓰러지지는 않을 것 같은 하프 마라톤을 선택했다.
목표는 걷지 않기. 죽을 만큼 힘들더라도 절대 걷지는 않기로 스스로 수십번 다짐했다. 도전으로 하는 마라톤인 만큼, 단순히 가쁜 숨을 몰아치고 땀 흘리는, ‘이불을 개는 것’ 보다 큰 성취를 이루고 싶었다. 호기로운 마음으로 출발선에 섰다. 두 손을 후후 불고 다리를 한번씩 털었다. 그리고 첫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약간의 긴장 탓에 출발선부터 심장 박동이 빨랐지만 외면하고 으레 내달렸다. 나는 도전하고 있거든. 처음 몇 km는 근육이 시키는대로 달렸다.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 달리기였다. 그런데 1km 마다 놓여있는 표지판을 점점 보기 어려워졌다. 다리의 관절 하나하나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점점 다음 표지판을 향해 뛰는 것이 목표가 돼버렸다.
10km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내가 달리기를 좋아했던 이유,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마비되어버렸다. 신체의 고통은 오감의 최우선순위를 차지해서 도저히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이 지점부터 재미있는 달리기가 아니라 한계에 도전하는 달리기로 바뀌었다. 애써 가쁜 숨과 뻐근한 다리를 무시하고 한걸음씩 의식적으로 뻗었다.
13km 지점을 통과하는 순간 그냥 옆 한강에 빠져버리고 싶었다. '새벽 강변 마라톤'이라는 이름 처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수도를 가로지르는 한강의 새벽 풍경을 바라보며 우아하게 달리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13km 지점에서는 모두 소용이 없었다. 6월의 7시는 새벽이 아니라 해가 이미 저만치 위에 떠서 힘을 과시하고 있었고, 한강은 뛰어들고 싶은 곳일 뿐이었다.
마지막 20km까지 계속 ‘너무 힘들다. 그만 뛸까?’와 ‘스스로 한 약속은 지키자’의 대결이 머릿속에서 일초에 한 번씩, 수천 번 이뤄졌다. 중간에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정말 그만 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를 끝까지 몰아부친적이 없었다. 뭐든지 고만고만한 노력을 했다. 내가 쌓아 올린 ‘작은 탑’을 보고 뿌듯해하고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래. 나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노력은 대단한 척하는 사람만큼 하고 있었다. 나도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쁘게 몰아쉬는 숨통과 다리의 고통은 내가 인지했지만 인정하지는 않았던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도와줬다. 덕분에 평소의 열등감이 증폭되어 목표했던 대로 걷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다.
나에게 물었다. "또다시 '하프' 마라톤이라는 ‘작은 탑’을 보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거야?" 그런데 이번만큼은 내가 조금은 대견하다. 내가 쌓아 올리는 탑이 점점 높아지고 있거든. 언젠가는, 어쩌면, 나도 대단한 탑을 쌓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따위의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하는 도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