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이맘때쯤 과거 Dell U2718Q 모니터로 4K 해상도에 처음 입문하였다. 당시에는 휴가 나온 군인이었는데 이제는 서른을 바라보는 직장인이 되었다. 근육은 빠지고 배 나온, 그러나 체지방에 비례하여 지갑은 두둑해진 현재의 내가 200만원이 넘는 모니터를 사며 얻을 수 있었던 기대와 설렘은 7년 전 70만원짜리 모니터 때 보다 훨씬 못하다. 그럼에도 새로운 전자기기는 아직 나의 세상에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4K HDR 모니터, DELL U2718Q 사용기
윈도우10이 HiDPI에 신경을 쓰겠다는 기사를 본게 2년 전 즈음이었던 것 같다. 윈도우10 레드스톤2가 출시되었다고 하여, 맥북에서 윈도우를 설치해서 200% HiDPI(High Dots Per Inch, 인치당 픽셀 집적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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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718Q 이후 여러 모니터가 나를 거쳐갔지만, U2718Q만큼 만족스럽게 쓴 모델이 없었다. 전자기기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는 내가 무려 3년이 넘도록 사용했으니 말 다했다.
그러다 2년 전, 코로나가 시작되고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더 높은 생산성이 필요하다는 좋은 구실이 생겨 모니터 교체에 대한 마음을 품게 되었다. 돈 버는 직장인이었던 나는 U2718Q를 구매할 때보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계획을 실현시킬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삼성의 27인치 4K 모니터인 S80UA (S27A800U)를 2대 사서 듀얼로 모니터암과 함께 구성했다. 개별 모니터를 비교하면 DCI-P3 색역이 U2718Q때보다 조금 더 좋아진 것 빼고는 사실 엇비슷한 사양이었다. 이 구성은 얼마 가지 않아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게임을 할 때마다 모니터암을 휘저어가며 다른 모니터를 옆으로 치우고 하나를 정중앙에 배치해야 했는데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일체형 듀얼모니터암을 써 본 사람은 알겠지만 생각보다 움직임이 내 맘대로 되지 않아 불편하다. 하나의 줄기에서 나온 두 개의 팔이 서로를 견제하며 제한하는 모양새가 된다. 샴 쌍둥이 같달까.
마침 재택근무를 벼르고 있던 회사가 코로나가 안정화되며 빠르게 그 시스템을 없앴고 자연스레 생산성에 대한 니즈가 사라진 나는 이 듀얼 구성을 포기하기로 했다. 집에서 일한다는 개념을 과감히 버리고 원래 나의 목적인 컨텐츠 소비 및 게이밍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영입한 것이 삼성의 28인치 4K 144Hz 모니터, S28A700N이다. 기존 S80UA와 다른 점이라면 DCI-P3 색역이 조금 줄어든 대신 144Hz라는 엄청난 주사율을 얻게 되었다. 디자인과 만듦새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4K에 144Hz 모니터는 당시 대안이 없었다. 사실 윈도우의 자동 컬러 매니지먼트(ACM, Automatic Color Management)가 최근에야 좋아졌기 때문에 2년전 당시에는 광색역의 의미가 퇴색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고주사율 모니터는 처음이었는데, 나는 스타크래프트가 60Hz까지밖에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 심드렁한 분야였다. 그런데 막상 써보니 60Hz밖에 안쓰는 게임이지만 마우스 포인터가 그 혜택을 고스란히 받아 게임할 때 단지 그 작은 화살촉의 부드러움이 체감되어 만족감이 엄청났다.
여기까지 왔을 때 내가 포기하지 못하는 두 가지는 고해상도 (4K) 이상과 고주사율(120Hz) 이상이 되어버렸다.
그 와중에 이직을 하게 됐다. 이번 회사는 코로나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에 대한 신뢰가 두터운 것인지 아니면 집에 있는 직원들도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것인지 몰라도 주 2회 재택이 가능했다. 사실 출근하는 날도 단순히 회사의 게이트에 최초 1회 찍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 언제든지 다시 집에 올 수 있어 자연스레 집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정된 좌석이 없고 공유오피스 기조인 회사에는 기본적으로 모두 27인치 QHD 듀얼모니터가 셋팅되어있다. 두 개의 모니터는 데이지체인으로 연결되고 출근하면 Thinkpad 노트북의 USB-C 단자에 모니터로부터 나오는 케이블 하나만 꽂으면 충전부터 두 개의 모니터 그리고 사용하지는 않지만 기본으로 비치되어있는 키보드와 마우스까지 한방에 연결되는 자리 수 백개가 셋업되어있다.
나도 이미 집에서 USB-C 케이블 하나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썬더볼트4를 지원하는 USB-C 케이블 하나로 썬더볼트4 독에 연결하면 거기서 유선랜, 삼성 4K 144Hz 모니터, 알리산 보조모니터 (15인치 QHD 120Hz), 마우스, 키보드, 스피커, 마이크가 모두 연결되는 환경이 이미 구축되어 있었다. 그런데 회사의 환경을 보니 내 썬더볼트4 독 셋팅보다 더 깔끔해서 질투가 났다. 모니터에서 모든 것이 연결된, 하나의 파이프라인이 적은 셋팅이었다.
자, 이 모든 상황을 조합해보자. 나는 4K 이상, 120Hz 이상, 썬더볼트4 독 기능을 내장한, 게임과 생산성이 모두 중요한, 마지막으로 듀얼모니터는 아닌 환경이 필요했다. 모든 조건을 AND 연산한 결과 남은 것은 Dell의 U4025QW 뿐이었다.
5K의 와이드 환경으로 단일 32인치 4K 모니터보다 1.3배 더 넓은 작업 공간을 제공했고, 썬더볼트4 독 기능도 있었으며, 120Hz 주사율을 지원했다. 부가적으로 장시간 코드를 볼 때 내 경험상 IPS패널이 눈이 가장 편했기에 더더욱 맘에 들었다. 명암비가 동급 VA패널 (보통 3000:1)에 비해 약간 떨어지지만 그래도 IPS블랙이라서 2000:1로 체면치레는 했다. FALD(Full Array Local Dimming)가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무자비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작업용이라는 컨셉에 충실한 것인지 아니면 그나마 가격을 억제하고 싶었던 것인지 해당 기능은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전문가용 IPS패널의 단점으로 꼽히는 응답시간은 FPS게임과 같이 순간적인 반응속도가 정말 중요하다면 필요하겠지만 나는 스타크래프트만 하는 아저씨라 그 정도는 감안할 수 있었다.
색역은 sRGB는 기본이고 DCI-P3까지 99%로 커버한다. 색역보다 중요한 것이 캘리브레이션인데 공장에서 팩토리 캘리브레이션까지 되어 정확한 색을 보여준다고 했다. 물론 이 가격에 당연한 것이긴 하다. U2718Q 때도 팩토리 캘리브레이션이 되어있었지만 DCI-P3가 90%밖에 지원이 안됐다.
게다가 요즘엔 윈도우11에 특정 버전 이후라면 ACM(Automatic Color Management)가 도입되어 모니터가 컬러 프로파일을 내장하고 있다면 알아서 현재 컨텐츠에 따라 색역을 맞춰준다. 아직 대부분의 앱들이 이 기능을 의식하고 만들지 않아 sRGB로 표현되지만 그래도 과거보다는 훨씬 낫다. sRGB로라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윈도우의 인터페이스, 아이콘 크롬에서의 네이버 로고가 형광색으로 보이지 않는다. 과거에는 이 현상을 피하려면 모니터의 sRGB 에뮬레이션 기능을 이용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면 색이 틀어지기 말썽이었고 sRGB를 넘어선 색을 표현하는 광색역 모니터라면 그 포텐셜을 제한하고 이용하는 것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macOS에 비하면 정말 말도 안되게 늦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바로잡고 있어서 다행이고 그나마 이 시기에 DCI-P3를 거의 재현할 수 있는 모니터를 구매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니터의 가장 큰 단점은 비싼 가격에도 FALD의 부재로 특정 사용 패턴에서는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본 통짜 백라이트에 의존하는 명암비 탓에 HDR 게임 또는 컨텐츠 소비용으로는 아쉬웠지만 나는 영상은 TV로 시청하고 게임은 명암비가 중요하지 않은 스타크래프트뿐이었다. 작업 공간 면에서는, 32인치의 1.5배가 되는 40인치의 크기와 작업 공간은 듀얼 모니터보다 조금 부족했지만 알리산 15인치 QHD 모니터가 빈자리를 메워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 단점들이 부각되는 이유는 가격이었다. 2024년 9월 기준, 229만원이라는 입이 벌어지는 가격표를 달고 있었다.
이 가격이면 삼성의 G95NC보다 비싼 가격인데 무려 DUHD(7680x2160)에 240Hz FALD 모니터를 사고도 남는 가격이라는 말이다. 어쩌면 거의 모든 면에서 S95NC가 상위 호환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U4025QW를 최종 낙점한 이유가 있다. Dell 모니터를 오래 사용하면서 그 만듦새가 더 훌륭하다고 느꼈고, 삼성은 썬더볼트4 허브 기능이 없고, 응답속도와 지연시간이 적은 대신 시야각이 좁고 커브가 너무 공격적(1000R)이며, 상대적으로 장시간 사용시 IPS보다는 눈의 편안함이 떨어지는VA패널이기 때문에 생업에 더 비중을 두는 나의 패턴상, Dell U4025QW가 더 적합하다고 결론지었다. 그렇지만 만약 내 주 사용처가 게임, 특히 FPS나 1인칭 게임이었다면 G95NC를 선택했을 것 같다.
U4025QW모델은 32인치 모니터를 옆으로 1/3개만큼(33%) 늘려놓은 것과 같다. 따라서 31.5인치 4K 모델인 U3223QE의 4K(3840 X 2160) 해상도에서 가로만 늘려놓은 5K(5120 X 2160) 해상도라 동일한 140 ppi(인치당 픽셀 밀도)를 가진다. 맥북 프로의 254 ppi보다는 낮지만, 화면 크기와 모니터와의 거리를 생각했을 때, 실제로 체감되는 픽셀 밀도는 맥북과 엇비슷하거나 살짝 못하는 정도이다. 아이폰16프로가 460 ppi라고 해서 맥북보다 글씨가 더 선명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
중간 창을 자세히 확대하면 아래처럼 표시된다.
3분할로 나눈 창에서 보기 편안한 텍스트 크기를 확대해도 글자 형태가 잘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해상도 덕분이다. 멀리서 보면 픽셀이 거의 분간되지 않는다.
화면 크기에 따른 ppi는 여기서 계산 가능하다.
깔끔한 선정리와 공간 활용을 위해 모니터암을 사용했는데, 뒷모습은 약간 지저분하지만 그래도 디자인이 군더더기 없는 인더스트리얼 룩이라 내 기준에서는 만족스럽다.
화질이라는 주관적인 것을 정량화한 지표도 있는데, 디스플레이 측정 분야에서 권위있는 RTINGS의 리뷰에서 결과를 볼 수 있다.
만약 만듦새와 사후지원, 그리고 Dell이 제공하는 특화 기능을 조금 포기한다면 동일한 패널을 사용한 크로스오버의 제품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 반값의 가격에 디스플레이에서 만큼은 동일한 스펙을 제공한다. 다만 나는 모니터는 패널이 다가 아니며, Dell이 제공하는 캘리브레이션, 자동 밝기, 펌웨어, 만듦새, 사후지원 등 부가적인 완성도가 그만한 값어치를 전달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이전 U2718Q를 사용하며 깨달았기 때문에 Dell을 선택했고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장비는 갖춰졌으니 일 못해도 댈 핑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