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삭한 오이무침은 역시 해외 사람들도 인정하나보다.
제목은 마치 한식 열풍으로 아이슬란드의 오이가 품절된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채널을 들어가보니 열 개중 하나가 한국식 오이무침이다.
2. 청라 전기차 화재로 전기차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던 와중에 포르투갈에서 확인사살을 해줬다. 무려 200대가 이 나쁜 전기차 때문에 홀라당 탔단다.
감식 결과는 전기차로 의한 화재가 아닌 내연기관의 전장류 문제였다.
공항 근처 화재로 파괴된 차량: 보상금이 280만 유로를 초과할 수 있음 - SIC Notícias (sicnoticias.pt)
언론사들은 정정보도는 커녕 또 다른 전기차 사고를 나르고 있다.
3. 인용구를 썼다고 해서 기자의 선정적인 제목 선정이 면책되지는 않는다.
저널리즘이 작동하지 않은 세 가지 예시를 보였다. 정치 기사는 무서워서 안 가지고 왔다. 과연 기자들이 정보의 취사 선택을 모르고 한 것일까? 모르고 했다면 충분한 취재를 거치지 않은 것, 즉 기자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알고 했다면 독자를 오도하고, 기만했기 때문에 더더욱 자격이 없다.
정치의 극단화가 이뤄지고, 정보의 홍수 덕에 이해 관계가 복잡해진 요즘 세상에서, 어느 때보다 중심을 잡아야할 언론이 휴짓장처럼 가벼운 기사를 쓰고 있다.
당장 네이버 랭킹뉴스에서 아무 기사나 하나 눌러 보라. 대부분의 기사는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너무나도 단편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여러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복합적으로 제시하기 보다는 한쪽의 주장을 얄팍하게 보여준다. 한 정치인이 말실수를 했다는 한마디가 30문장으로 부풀려지고, 확대 재생산된다. 정작 정치인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본질을 다루기 보다는 알맹이를 둘러싼 정치인간의 갈등과 팬덤에 대해서만 다룬다. 모든 사회 문제는 정치 문제로 변환되고, 사람들은 지지 정당이 본인들의 가치판단을 대리해주기를 바란다. 본질은 얼룩덜룩한 기사들 속에 어느 순간 흙탕물이 되어 편향되어버린 정치 고관여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을 놓아버린다.
조선시대 예송논쟁을 학창시절 우리는 코웃음치며 바보같은 사람들이라 비웃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매일같이 예송논쟁이 벌어진다.
한 가지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았다. AI의 도움을 받아 일러스트도 한번 만들어 봤다 ㅋㅋ
껍질 논쟁
초록당 A 의원:
사과는 껍질 째 먹어야 합니다. 껍질 속에 있는 영양 성분이 건강에 좋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껍질을 벗겨서 먹으라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국민 여러분의 건강을 신경 쓰지 않는 파렴치한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가’ 신문사: “사과 껍질을 벗겨 먹으면 수명 단축될 수도…” A 의원의 소신 발언
노란당 B 의원:
사과를 껍질 째 먹어야 한다는 것은 완전히 허황된 소리입니다. 잔여 농약 성분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진실을 짜깁기하는 A 의원은 저번 ‘물복 딱복 논란’ 때도 그랬습니다. A 의원이 속한 초록당의 전신을 아십니까? 과거 소작농들을 착취했던 이기적인 농장주들의 후손입니다. 저희 노란당은 ‘농약 독재’를 막고 국민들의 건강을 최우선시하겠습니다.
‘나’ 신문사: “초록당은 우리를 착취한 사람들의 후손” B 의원의 호소
‘다’ 신문사: 초록당 C의원 “B의원 지금 나올 때 아냐.. 국민들 더 힘들게 할 수도”
‘라’ 신문사: 노란당 최고위 “노란당, 참담한 지지율을 사과 이슈로 물 타기 해서는 안돼”
초록당 C의원:
우선, 우리 초록당은 농장주들의 후손이 아닙니다. 오히려 초록당 E의원의 아버지가 논 수 백 마지기를 가졌다는 팩트가 있지 않습니까? 더불어 B 의원의 사촌이 모 기업에 취업을 청탁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해당 사촌은 청탁으로 통째로 먹는 세척사과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본인들은 껍질 째 먹는 사과를 먹으면서 국민들에게는 깎아먹으라니, 자기들만 건강해지고 싶은 그들의 이중성입니다!
노란당 B의원:
C의원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더불어 최근 들어온 첩보에 따르면 A의원이 과도 회사로부터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있는데, A의원에 대한 특검을 요청합니다.
‘마’ 신문사: B의원의 초강수 “A의원의 과도 회사와의 유착, 특검으로 풀어야”
'파' 신문사: ...
... (계속되는 소모적인 논쟁)
여기까지 간단한 스토리를 만들어봤다. 어떤가? 수 많은 논리적 비약이 있다. 특정 정치인들이 팩트체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심지어는 본인들도 팩트가 아닌 것을 알면서) 청자들이 쉽게 듣고 판단할 수 있게끔 교묘하게 본질을 왜곡하는 발언을 한다.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는 상대 정당의 과거 행적을 쉽게 뭉뚱그린 것이 (농장주의 후손이라던가 하는) 현재 논쟁에까지 영향을 미칠 이유가 없다. 심지어 상대 당 소속 의원의 아버지가 농장주이면 어떤가? 한 의원은 정당을 대표할 수도 없고 과거 또는 현재의 기득권이 악한 사람일 이유도 없다. 특정 정치인의 친인척 비리는 도덕적 잣대로 그 나름의 사건을 다루면 되는 것이지 사과의 먹는 방법을 제시하는 의견과는 상관이 없다. 또한, 하나의 논쟁거리의 의견이 다른 것으로 상대를 악마화할 수 있는 근거는 더더욱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과의 껍질에 대한 논쟁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정당과 정치인의 알력 싸움만 남게된 것이다. 이 사건을 보는 사람들은 사과 껍질보다는 의원들의 상대 깎아내리기에만 더 집중하게 된다.
사과를 먹는 두 방법 다 나름의 일리가 있을 수도 있었지만 결국 인물과 정당의 싸움으로 끌어내려서 사회가 이득이 될만한 결론을 도출하기 어렵게 됐다. 흙탕물이 되어 일반적인 사람들은 사과의 껍질은 잊어버린 채 노란당과 초록당이 과거에 어떤 파렴치한 짓을 했는지 상기시키며 아무렴 그들이 그렇지라는 직선적인 판단을 내리고 싶어할 것이다. 이에 언론은 독자들의 가치판단을 도와줄, 중심을 잡는 양질의 기사를 쏟아내기는 커녕 특정 집단의 입맛에 맞추고 사실을 취사 선택한 기사만을 내보낸다.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것이다.
언론이 양질의 기사를 제공하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언론사가 언론 중개사(주로 네이버 또는 유튜브)로부터 조회수에 따른 원고료를 지급받는다는 것이다. 언론사들은 일반적인 국민들이 관심있을 만한 주제를 국민들이 좋아할 만한 논조를 가지고 일방적인 주장을 쏟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수록 사람들은 확증 편향되어 눈과 귀를 더욱 막게 된다. 소위 ‘알고리즘’은 이 현상을 가속화시켜 사람들은 즐겨 소비하는 신문사와 논조만 챙겨보게 된다. 세상의 소식을 이어주는, 눈과 귀가 되어주는 매체가 언론인데 참 아이러니 하지 않나.
이야기 창작에 재미를 붙여 파죽지세로 하나 더 만들어보았다. 이번 것은 좀 더 사실적이다.
A 씨의 출근길
피곤한 아침 출근길, 유튜브를 튼다. 새 영상이 올라왔다. A 씨가 좋아하는 말을 해주는 소위 ‘바른 말 해주는 사람’이 상대 무지개당의 특정 인물을 맹비난한다. 앞뒤 맥락은 다 잘렸지만, 무지개 정당의 모 의원이 한 발언의 발췌 부분을 보니 역시나 무지개당 답다. A 씨의 다음 루틴, 스마트폰의 네이버 앱을 열었다. 네이버 기사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해당 발언을 제목으로 한 수많은 보도가 나와있다. 그 중 내가 좋아하는 언론사의 기사를 누른다. 애초에 해당 언론사만 구독을 해놨다. 다른 언론사는 기레기들 천지니까. 기사는 읽는둥 마는둥 댓글 창으로 내린다. 아, 세상의 정의는 죽지 않았나보다. 해당 의원은 역시나 예상했던대로 예전부터 논란이 많았으며 도덕적으로도 흠결이 많다는 수많은 댓글들의 증언이 이뤄졌다. 이로써 팩트가 체크됐다. 내 생각은 역시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모닝 커피를 타러 가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뉴욕 타임즈의 성공적인 디지털 저널리즘 사례를 하나 공유하고 마친다.
https://brunch.co.kr/@kayros/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