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사를 읽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의 말이 너무 와닿았다.
2023년 7월 13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중 일문일답.
글로벌 GDP 순위가 13위로 밀렸다. 10위권 재진입이 어려울까?"단기적으로 볼 때는 환율 변화에 주로 기인한 단기적 순위 변화라 생각한다. 우리는 에너지에 굉장히 의존하고 있는 나라다. 작년 석유값이 올라갈 때 결과적으로 달러화 대비 환율이 많이 절하된 반면, 순위가 올라간 나라가 브라질, 러시아, 호주다. 여기는 다 에너지 생산국, 수출국이다. 환율변동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시 조정될 가능성이 큰 원인이다.단기적으로 환율 변동에 의해서 조금 변동하는 것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가 고령화 그 다음에 저출산, 그리고 구조조정을 미뤘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면 기업경쟁력이 많이 둔화된 것, 이런 것을 고려하면 성장률이 낮아지게 되면 불가피하게 경제 규모의 순위도 낮아지지 않겠나. 그게 더 구조적으로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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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일답] 이창용 한은총재 "연말 물가 다시 오를 가능성…긴축기조 유지"
https://it.chosun.com/site/data/html_dir/2023/07/13/2023071302561.html
불과 5년 전만 해도 중국산은 품질이 좀 떨어지지만 가격이 싸서 쓰는, 마치 다이소 건전지 같은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최근엔 품질도 별 차이가 없는데 가격은 아주 싼 그런 위치로 중국산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중국 내수용 전기자동차를 보았는데, 과거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외관이 전통있는 유럽산 자동차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썩 준수한 외모에 다른 자동차들이 가지고있는 기능은 모두 담아내면서도 꼭 플러스 알파를 담아내고 경쟁자의 2/3 가격에 판매하는 것을 보았다. 예전 휴대폰 배터리를 교환하듯이 전기차 배터리를 교환하는 등 기성 자동차 업체에서 모종의 이유로 상용화에 걸림돌이 되어서 포기했던 것도 있었다.
중국의 기술력이 한국 또는 다른 선진국을 넘어섰다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은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공산당 정부아래 잿빛 중국 기업이 아니라, 생각보다 중국 내부에서 나름의 혁신이 일어나고 있고 13억 인구 덕에 그 혁신의 개수는 더 많이 일어날 것이며 또다시 그 인구 덕에 규모의 경제를 빠르게 달성하여 새로운 기술을 값 싼 가격에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선진국들에 비해 시차가 있는 중국이 지금 가장 빠르게 발전시키고 있는 것은 제조업이고 하필이면 우리나라가 아직도 큰 영역을 차지하는 산업이다.
IMF 시절 현대전자를 인수해 지금 LCD업계의 최강자가 된 중국 BOE를 보라.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BOE의 저가 공세에 못이겨 LCD 시장에서의 경쟁은 포기하고 OLED라는 더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만들어서 경쟁을 겨우 따돌리고 있는 중이다. 미-중 갈등이 없었다면 지금쯤 아이폰에는 이미 BOE의 OLED가 꽤 큰 비중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다.
배터리 시장도 비슷하다. 고부가가치인 3원계/전고체 배터리는 한국이 기술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현시점 시장성이 가장 큰 LFP 배터리는 중국이 규모의 경제를 더 빠르게 달성했다. 중국 전기자동차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와 내수시장에 힘에 부친 한국의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2021년 30%에서 2022년 24%로 크게 하락했다.
반도체 굴기는 제아무리 중국이라도 특유의 엄청난 시설투자를 필요로하는 것과 미국의 제재로 인해 주춤하는 듯 한다. 하지만 관심있게 본 사람이라면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YMTC가 상대적으로 기술 진입이 쉬운 플래시 메모리에서 시장 진입을 성공했고 실제로 수익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비자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중국의 파운드리 기업 SMIC도 미국에서 최선단노드를 위한 EUV 장비를 제제하기 전까지 10nm 급 공정에서 열심히 따라오고 있었고 지금도 파운드리 시장 5%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시가총액 Top10에 중국 제조업 굴기와 연관이 없는 종목은 없어 보인다. 한국이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제조업에 유난히 치우쳐있고, 이창용 총재의 말대로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실재하던 2010년대 한국이 전례없는 수출호황기를 맞이하면서 그 열매의 달콤함에 취해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이 선진국이라면 의례 치뤄야했던 새로운 산업 차원으로의 도약에 장애물이 되었다.
또다시 이창용 총재의 말을 빌려, 한국의 수출이 미중 갈등의 악영향이 아니라 기업 경쟁력의 약화라는 말에 적극 공감한다. 나조차도 값싸고 품질 좋은 중국 메이커들을 많이 알고있고 로봇청소기, USB 허브, 소형 충전기, 자동차 악세사리 등 유형의 '물건'에 대해서 신뢰감이 생겼기에 알리익스프레스를 자주 이용한다. 우리나라 온라인 최저가보다 반 이상 저렴한 경우도 빈번하다.
앞선 3개의 산업에서 (디스플레이, 배터리, 반도체) 완제품이 아니라 중간재 제품들의 경쟁력도 빠른 속도로 따라잡히고 있음을 보였다. 완제품의 경우 소비자들의 반중감정이라던지 하는 소비심리가 기저에 영향을 미치지만 중간재의 경우 기업 간의 B2B 거래에서 품질이 좋으면 바로 낙점된다. 물론 한국의 기업들이 더 힘을 내고 기술개발에 매진하여 지금부터라도 격차를 늘리고 제조업의 재부흥이 올 수도 있다. 나도 한 명의 한국인으로 간절하게 응원한다. 다만, 모든 일이 그렇듯 B플랜을 세워 마땅히 선진국이 할 수 있는 서비스 산업에 빨리 눈을 돌리고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손에 잡히는 무엇에서 형체가 없는 가치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 해야한다.
개 중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가. 전국적으로 초고속 인터넷 망이 한국만큼 잘 구축된 나라를 본 적이 없다. 동시에 오늘날 인공지능, 기계학습으로 IT 산업은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이런 가슴 뛰는 상황은 한국이 산업 구조를 재편할 절호의 기회 아닐까? 한국에도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많이 생겼다.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토스' 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그런데 저 기업들의 공통점이 보이는가? 네이버(라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수시장 킬러들이다. 해외에 진출한 국내 은행을 보았는가? 증권사를 보았는가? 통신사를 보았는가? 그들이 일상속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결국 새로운 부가가치를 크게 창출하기 보다는 한국이라는 파이를 같이 갈라먹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당연히 필요한 기업들이지만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외화를 벌어 한국 산업의 체질을 바꿔줄 수 있는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에선 쉽지 않다.
기존의 관성
개혁에는 희생이 따른다. 4차 산업혁명이 한창이라는 지금, 내 대학 친구들을 봐도 회사 동료들을 봐도 비전공자들이 컴퓨터 관련 기술을 익혀 취업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말인즉슨 대학이 공급해주는 SW 전공자에 비해 산업계의 요구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새로운 산업은 인력을 더 필요로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시대의 부름이다. 증기기관이 탄생하며 기계공학이 발달했고 에디슨 이후로는 전기공학이 발달했을 것이고 트랜지스터의 발명 이후로는 전자공학이, 연산 능력의 발달로 컴퓨터 공학 순서로 성장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최근 반도체 기업들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발벗고 대학에 반도체 계약학과를 설치한 것은 대학이 산업계의 요구에 부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의 인력 정체는 산업의 비효율을 가져오고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미국에는 2017년 대비 2021년 컴퓨터공학(미국에선 Computer Science) 전공자의 수가 1.5배가 되었다.
동기간 한국은 33211명에서 35312명으로 약 6% 증가했다. 언론에서는 학교측에서 억지로 학과를 통폐합하고 폐과시키는 등 대학의 억압적인 조치에 대해 조명하지만 생각보다 교수들은 자신들의 학과를 굉장히 지키고 싶어한다. 그들도 저출산의 늪에서 학과보다 대학이라는 더 큰 조직에서 하달된 명령을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 뿐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대학 인력을 산업계의 수요에 맞춰서 조정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설파했지만, 대학은 취업 사관학교가 아니라는 낭만적인 말 뒤에 숨겨진 파이가 줄어들 학계의 본뜻에 좌절되어왔다.
한국의 의료서비스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의료서비스의 상품화 또한 빈번히 실패했다. 지방에만 가도 의사가 부족한데, 평균연봉 3억에 달하는 의사를 통해 외화를 유치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 것은 극도로 여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은 정말 어렵다. 국가에서 라이센스를 관리하는, 소위 전문직을 건드리려면 과거 참여정부가 로스쿨을 설치하며 그러했듯 엄청난 마찰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사의 연봉 수준은 OECD 최상위권이었다. 전문의 중 봉직의 임금 소득은 연간 19만 5463달러(2억 5566만원), 개원의는 연간 30만 3000달러(3억 9632만원)로 봉직의·개원의 모두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다. OECD평균은 10만 8481달러(1억4189만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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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많지만 의사 멕시코 다음으로 적어…연봉은 OECD 최상위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20726500158)
학계의 관성, 의료계의 관성, 금융시장의 관성 이외에도 수 많은 관성이 한국을 답보시키고 있을 것이다. 미중 무역갈등은 한국이 저성장의 늪에 빠진 이유가 아니다. 일본이 관성의 늪에 빠져 잃어버린 30년에 빠졌듯이 우리도 그러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기존의 관성에 과감히 도전하는 관료와, 무형의 제품으로 경쟁력을 가진 새로운 기업들이 나타나 한국이 다시 부흥시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