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익명성을 위시하여 분노를 쏟아내는 사람들의 무례한 글들이 너무 보기 싫다. 극단적인 사람이 주로 댓글을 작성하는데, 가벼운 문장과 무심한 추천들이 모여 무거운 여론을 만든다.
허준이 교수의 말대로, 나라는 자신을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 총 세개의 완벽한 타인으로 구분한다면, 세 타인은 운명이라는 끈으로 묶여있기 때문에서라도 친절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례, 혐오, 분열을 일으키는, 누군가를 비방하는 무심한 댓글을 작성하는 현재의 자신이 미래의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을지 곱씹었으면 좋겠다.
슈퍼맨처럼 강하고, 정의로운 직선적인 히어로보다는 때로는 망가지고 절대 선이 아닌, 본인의 이기심을 위해 때때로 감정적인 선택을 하는 위트있는 아이언맨과 같은 히어로를 맞이하는 시대가 되었다. 히어로물은 점점 현실의 인간과 비슷해져 가는데, 사람들은 아직도 절대 선을 추구하고 있다. TV속 연예인의, 유튜버의, 음악가의, 작곡가의, 축구선수의, 야구선수의 모든 사건을 선과 악으로 나뉘어 평가한다. 언론에 자주 노출이 되는 직업일수록 그만한 사명감을 가지고 행동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으니 당해도 싸다는 여론을 형성한다. 물론 그들이 소위 공인으로서 더 소신을 갖고 신중하게 행동하였으면 하는 바람은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들도 인간이 아닌가. ‘공인’이라는 단어도 조금 웃긴데, 법적으로 특정 집단의 언행을 가중처벌하는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들에게 가해질 높은 도덕적 잣대를 용인시키기 위해 대중이 만들어낸 교묘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인간들이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종종 망각하곤 한다. 아픈 인간의 장기를 정밀하게 치료하는 것도, 복잡한 국가간의 외교술을 세우는 것도, 직관이 허용하지 않는 N차방정식을 푸는 일도,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원자 수준의 공정 기술도 모두 인간이 만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기에 한계가 있고 실수를 한다. 정부, 사법체계 그리고 회사라는 인간들이 모여 만든 정교한 시스템 덕분에 우리는 과거로 퇴보하지 않고 점진적으로 사회와 기술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중학교 수학 과정을 아는 두 명의 인간이 효율적으로 일을 나눠서 한다고 해서 대학생이 고민하는 복잡한 수학 문제를 이해할 수는 없다. 이 때, 가장 좋은 것은 중학교 수학 과정을 아는 이 두 사람을 대학생까지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이 두 명의 인간은 두 개의 문제를 병렬적으로 풀 수 있다. 인구 5천만의 대한민국이 전세계에서 이스포츠를 가장 잘하는 나라가 될 수 있는 이유가 그것이고, 17억 대국 중국이 피파랭킹 1등을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집단의 성숙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과연 혐오와 분열의 댓글을 정제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정작용을 가진 사회는 가능한 것일까. 그 사회가 불가능한 것이라면, 시스템적으로 소위 ‘공인’을 지켜줄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들도 인간이니까.